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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은 토끼

솥뚜껑 보고 놀랐다

by 할수 최정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토끼. 겁이 많은 토끼가 개구리에게 돌을 던졌다. 한 개구리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토끼 씨, 돌을 던지지 마세요. 당신은 장난일지 몰라도, 우린 목숨이 왔다 갔다 해요"라는 말을 들은 토끼. 자신이 한 일이 부끄러워 숲 속으로 들어간 뒤 다시는 연못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숲 속으로 들어간 토끼는 어떻게 살았을까? 토끼인들 갑자기 변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냅다 달아날 것이고. 개구리에게 돌을 던진 미안함과 부끄러운 마음 때문에 외출 또한 제대로 못할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겁 많은 토끼 솥뚜껑을 보고 놀란 것이다. 토끼를 놀라게 한 자라는 무엇이었을까. 바스락! 마른 잎 소리에도 놀라 도망칠 수밖에 없을 만큼, 힘겨운 일을 겪은 토끼. 스스로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연찮게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토끼가 변할 확률보다 숲 속에서 혼자 은둔형 외톨이 살아가게 될 확률이 더 많다.


스토리테링 생태공예 수업을 할 때, 겁 많은 토끼가 숲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질문하면.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조그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토끼.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토끼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토끼가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과 자신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보태진 대답일 것이다.


겁 많은 토끼가 개구리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큰 잘못을 했기에 그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연한데. 잘못을 했다면 해야 할 후속 행동, 사과를 하지 않았다. 토끼가 개구리에게 사과를 한다면 삶이 한층 가벼워질 텐데. 토끼에겐 사과할 내면의 힘이다.

내가 그랬다. 폐결핵에 걸린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불안해서, 혹시나 돌아가시면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대학을 포기했는데. 대학을 못 간 것이 몹시 수치스러웠다. 다른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이 아나라, 사과할 대상이 없는데. 왜 수치스럽게 여겼을까.


공무원으로 근무하기 전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없다. 학교 집 학교 집 쳇바퀴 돌았던 나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전혀 없었다. 죽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다가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운 기억밖에 없다.


요즘엔 인터넷에 세상의 온갖 정보가 넘쳐나지만, 중학교 졸업 때까지 우리 집 조명은 호롱불이었다. 내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가 손전등이 아니라 호야 등불을 켜 들고 마중 나왔다. 아버지가 공무원 시험을 쳐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집콕하다가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병에 걸렸지만 살아 계셨는데 왜 돌아가실까 그렇게도 불안해했을까. 이것이 내 솥뚜껑인가 싶어. 나를 놀라게 한 자라를 찾아 나섰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시간의 구석구석을 더듬었지만 나의 자라는 없었다. 아니, 찾지 못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같이 흐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울고 있는 열아홉 살의 나를 만났다. 열아홉 살의 내가 예순 후반이 된 내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난 괜찮아. 넌 최선을 다했어. 최선을 다해 살아줘서 고마워." 열아홉 살의 나를 안아주며 말하는데.


이 말이 내 심장을 퉁, 튕긴다.

심장에서 눈물이 솟구친다.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는 듯.


난 울면서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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