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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ug 18. 2022

사자와 학

동상이몽

 사자와 학 이야기다. 사자가 목에 걸린 뼈를 빼 달라고 외쳤다. 도와주러 오는 동물이 없었다. 사자가 큰상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 사자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여주는 건데, 학이 사자의 행동거지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 학은 목숨을 담보로 사자의 목에 걸린 뼈을 빼주었다. 그 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했기에 사자의 목에 걸린 뼈를 빼내 주었을까. 큰상을 받아야만 하는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걸까.


사자는 학이 목에 걸린 뼈를 빼내 주자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린다. 학이  왜 큰 상을 안 주느냐고 묻는 말에 시자의 시큰둥한 대답은 이미 큰 상을 주었다고 한다. 학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자가 화를 낸다. 사자가 제 입에 들어온 먹이를 잡아먹지 않고 살려주었으니, 그게 큰 상이라며.


사자의 입장에서 입 속의 동물을 잡아먹지 않고 살려주는 것이 큰 상일 수 있다. 사자가 주는 이 상을 받으려고 사자의 입 속에 머리를 넣을 동물은 없을 것이다. 숲 속에 많은 동물들이 있었을 텐데. 큰 상이라면 서로 차지하려고 할 텐데. 왜 아무도 빼주지 않는지 알아보지 않고. 사자의 입 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이 어떤 일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학은 사자의 입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어리석은 학. 사자가목구멍에 뼈가 걸렸으니 다행이었다. 배고픈 사자가 거짓으로 그랬다면, 학은 잡아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사자가 정말 큰 상을 줄 생각이 있었을까. 학은 사자에게 큰 상이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했다. 사자가 주는 큰 상이 마음에 들더라도, 사자가 그 상을 줄 능력이 있는지, 약속을 지킬 것인지, 혹은 잡아먹힐지,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야 했다.

사자와 학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사자가 주려는 큰 상과 학이 생각하는 큰 상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사자와 학의 이야기 같은 일이 종종 벌어진다.


어느 날 남편이 가지 반찬을 만들어 먹자고 했다. 나는 가지를 쪄서 양념장으로 무쳤다. 남편은 이게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뭔데?" 했더니. "가지전."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가지전이 먹고 싶었는데. 가지 반찬이라고 말했고. 나는 가지무침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남편이 가지 반찬이라고 할 때, 어떤 가지 반찬을 원하는지 물어봐야 했다. 나는 가지무침을 하느라고 수고했지만, 남편은 불평했다.


가지 반찬 같은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 년 같이 살아왔는데, 가지 반찬이란 말 하나를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입장이 서로 다른, 남편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 또한 같을 수가 없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을 둘 다 행복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노력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일심동체가 맞겠지만. 우린 행복이란  동상이몽을 꿈꾸는 이심이체의 부부다.


가지 반찬이란 말이 분명한 말 같지만, 모호한 말이다. 가지로 만들 수 있는 반찬 종류가 가지무침과 가지전 외에도  김치와 튀김과 다른 채소와 고기를 섞어 만드는  방법 등 여럿이기 때문이다.


이심이체의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특별한 비법은 없다. 사람들 간에 소통하는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서로 마음과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기. 모호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땐 물어보기. 수용하기. 수용할 수 없을 땐 서로 조정해나가기 같은 것인데.


남편이 가지전을 가지 반찬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게는 가지무침으로 인식되는 경우처럼. 모호한 말인데, 분명하다고 잘못 인식이 되는 경우가 있고 분명한 말인데 모호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묻지 않고 넘어가기도 한다.


부부 일심동체란 말의 뜻은 좋지만. 실제로 부부 일심동체란 틀 속에 갇히면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부가 일심동체이라면 우리 부부의 가지 반찬 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부부가 의견을 통일하려면  한쪽이 양보하거나 희생해야 한다.  자신의 뜻을 양보하고 내려놓는 일, 힘든 일이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 중의 하나는 가지 반찬 같은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심이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이심이체의 부부가사자에게 큰 상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고 지레짐작하여 헛수고한 학처럼 살지않으려면.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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