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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y 20. 2022

때죽나무

토끼 세 마리를 잡다

올해도 때죽나무에 꽃 아닌 꽃이 피었다. 꽃이 아닌 이 꽃을 충영이라고 부른다. 충영은 벌레집인데. 벌레가 만든 것이 아니라 때죽나무가 만든 것이다.  


2004년 수목원에서 자연 지도자 교육을 받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한 나무에 핀 예쁜 꽃을 발견했다. 식물도감을 아무리 뒤져도 이렇게 생긴 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무슨 꽃인지 몰랐다. 꽃이 아닌 꽃이었으니까. 수목원 연구사님께 가서 물어봤다. "이게 무슨 꽃이에요?" "때죽나무 벌레집입니다." "네? 이게 벌레집이라고요?" 나는 무척 놀랐다. 이렇게 예쁜 것이 벌레집이라니!

                                                     때죽나무 벌레집


때죽나무가 벌레에게 잎을 갉아먹히면 그 부위에 상처가 난다. 그 상처에서 수액이 흘러내린다. 우리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처럼.  때죽나무는 상처와 수액으로 인해 가렵기도 하고 아프기도 할 것이다. 또 벌레가 잎에 많이 달라붙으면 광합성을 하기도 어렵다.


손이 없는 나무는 잎에 붙은 벌레를 쫓아버릴 수 없다. 때죽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벌레로부터 피해를 적게 받고 싶다. 때죽나무는 잎들이 광합성을 하는데 방해되는 이 벌레들을 한데 가둬버리기로 한다.


나라면 얄미운 벌레들을 가둘 방을 조물조물 대충 만들 것 같은데. 때죽나무는 예쁜 꽃방을 만들어 벌레들에게 내주었다. 임대료는커녕 앞으로도 아프게 하고 가렵게 할 건데. 또 먹여주기까지 해야 하는데.

                                                 때죽나무 꽃


나는 왜 때죽나무가 벌레에게 예쁜 꽃방을 만들어 주었을지 생각해본다. 때죽나무도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가 미울 것이다. 그래서 벌레를 가둘 집을 대충 지었다고 해보자. 우선은 광합성을 하는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벌레가 안 보이니까 견딜만할 것이다. 그러나 때죽나무가 줄기에 매달린 엉성한 벌레집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때죽나무는  얄미운 벌레는 보이지 않게 가두고 자신은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고민하였을 것이다. 나라면 나를 갉아먹는 벌레에게 예쁜 꽃방을 만들어 주지 않을 것 같은데. 때죽나무는 벌레가 밉기는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예쁜 꽃 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 후  때죽나무는 미운 벌레를 보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또 잎이 광합성을 하는데 방해받지 않게 하면서도 기분 좋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때죽나무가 세 마리 토끼를 잡다니! 참 놀랍지 않은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는 속담은 때죽나무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나무보다 낫지 않고 나무가 사람보다 못나지 않다는 걸 때죽나무에게서 배운다. 때죽나무는 나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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