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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pr 28. 2024

[100-55] 버려야지 마음먹은 것들

오늘도 껴안고 살고 있네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버리지 않아 온갖 물건으로 가득한 방.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면서 비우지 않아 온갖 감정으로 가득한 마음. 맘먹어도 먹어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 어쩜 이리 닮았을까? 물건 버리는 일을 생각하지 말자. 몸을 움직이자. 눈앞의 물건 중 가장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부터 하나씩 버리자. 생각은 그럴듯하다. 


우선 볼펜 하나만 두고 생각해 본다. 필기구가 필요한 날이 있다. 이때 급히 나가다가 볼펜을 챙기지 않고 나갈 때가 있다. 그러면  편의점이나 다이소에서 볼펜을 살 수밖에 없다. 볼펜을 살 때 늘어나는 볼펜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볼펜이 서랍에 마흔 개나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연필도 필통 하나 가득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연필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버리고 나면 다시 사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아서다. 새것이면 나눔을 했겠지만 모두 깎은 연필이다. 근데 하나 같이 몇 번 안 쓴 것이라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다. 볼펜과 연필만 이렇게 버리지 못하고 있겠는가.


마음을 비우겠다고 마음을 다잡을 필요도 없다. 마음을 비우겠다고 생각하거나 꼭 비우고 말겠다고 하는 결심하는 것도 마음을 버리기보다 보태는 일이다. 비우겠다고 결심해서 마음이 비워지던가. 구름이 흘러가듯 마음도 흘러가는 것이다. 마음을 호수가 아니라 하늘이라 생각하자. 순간순간 감정을 구름이라 여기자.  구름이 흘러가지 않으면 쌓인다. 쌓여서 무거워진 구름은 먹구름이 되고 비가 내린다. 구름을 많이 잡아둘수록 많은 비가 내린다. 마음도 구름과 마찬가지다.


사실 마음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항상 여기 있다. 흘러가는 것은 감정이다. 우리의 감정도 구름과 비슷하다. 구름이 흘러가지 않고 쌓여서 무거워지면 비가 되듯, 우리의 감정도 쌓이면 무거워진다. 감정이 무거워진 것을 우울, 무기력, 권태, 슬픔, 불안 등 무어라 불러도 상관없다. 구름이 무거워져서 비가 되어 내려앉듯 무거워진 우리의 감정도 내려앉는다. 문제는 감정이 내려앉을 때 우리도 같이 내려앉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내려앉으면 우리는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예전에 그렇게 원했던 일조차 시들해진다. 


감정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감정을 모르면 낭패를 본다. 쌓여서 무거워지니까. 무거워지면 나를 꼼짝 못 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 감정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돌보려면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감정이든 그 감정알아채고 보듬어주면 감정은 흘러가버린다. 그러면 절로  마음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  그러니까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려고 애쓰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나는 마음을 비우려고 애를 썼다. 애를 써도 써도 마음은 비워지지 않고 도리어 가득 차서 무거워졌다. 마음은 비우는 게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는 온갖 감정들이 가득 차있고 진즉 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나로 가득 채워야 했다. 마음에 내가 가득찬 상태를 자긍심이라고도 하고 회복탄력성이 좋다고 한다. 내가 가득찬 마음을 무어라 부르던 상관이 있을까. 마음에 내가 가득한 나는 뭘 하든 신이 나고. 즐겁고 기쁜데.  우리가 껴안고 살아야 할 것은 바로 나로 가득 찬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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