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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pr 27. 2024

[100-54] 나는 떡잎을 내민 나무다

이파리 몇 장으로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

나는 떡잎을 내민 어린 나무다.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숲 속, 바람이 불 때 어쩌다 햇빛이 내려앉는 바닥에서 이제 막 떡잎을 내민 나무다.  방금 한 나무가 떡잎을 내밀었다는 것을 숲 속 나무들도 새도 나비도 모른다. 옆에서 거의 동시에 떡잎을 내민 다른 나무도 모른다. 나는 그 떡잎을 보고 있는데, 그 떡잎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안녕, 나는 새로 나온 떡잎이야." 말을 건네도, 귀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도 제 삶을 사느라 다른 이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을 터이다. 나는 소리쳐보기로 한다. "나 새로 나온  떡잎이야. 곧 커다란 나무가 될 떡잎이라고." 이 소리는 바람에 묻혀버린다. 


나는 얼마 전 자연에세이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을 냈다. 이 책을 내고 난 후였다. 숲 속 커다란 나무들 아래 떡잎 한 장을 내민 나무처럼 나의 존재가 한없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작은 씨앗 하나가 수십 년 간간히 비치는 좁쌀 햇빛을 모아, 몸을 데우고 뿌리를 뻗고 떡잎을 밀어 올리기까지, 떡잎을 낼 수 있을지 말지 졸인 마음을 다른 이들이 알겠는가. 사실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리 살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막상 떡잎을 내고 보니 커다란 나무들 아래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저 수많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 사이로 과연 햇빛을 더 받을 수 있을까? 몸을 비틀어본다. 떡잎을 내고도 갈 길이 막막하고 멀다. 떡잎을 내고 나면 길이 환하게 보일 줄이 알았는데 말이다. 떡잎을 내지도 못한 채 흙더미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운이 좋아 떡잎을 내밀 수 있었다. 


앞으로 커다란 나무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늦가을에 핀 꽃처럼 따스한 햇빛을 쬘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이 피리를 내고 살고 있으니 됐다. 숲의 바닥에는 태풍에 넘어져 썩어가는 둥치가 있다.  썩은 나무 둥치에는 돋아난 버섯과 버섯을 먹으며 살아가는 벌레들이 있다.  이끼와 이끼 안에서 이끼를 먹으며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며 사는 벌레들이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도 대한민국에 살듯 이들 버섯과 이끼와 벌레들은 숲에서도 썩은 나무둥치에 사는 것이다. 


이파리 몇 개인 작은 나무의 세상에는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햇빛도 잠시 들고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햇빛을 풍성풍성 먹어본 적도 걸쳐 본 적도 없다. 큰 나무들이 꽃을 피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시들어 떨어진 꽃잎이 보인다. 고사리가 잎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이고 썩은 나무 둥치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인다. 버섯이 보이고 이끼가 보이고 거기 사는 벌레들이 보인다. 이른 봄날 반짝 꽃을 피우고 시들고 열매를 맺는 풀들이 보인다. 아마도 커다란 나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커다란 나무들이 사는 세상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닐 것이고. 낮고 작은 것들이 사는 세상이 항상 좋지 않은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다른 세상인 것이다. 나는 높고 커다란 세상을 꿈꾸며 상상하기보다  낮고 작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상을 자세히 보고 느끼며 살기로 한다.  이렇게 살기로 작정하니, 떡잎과 몇 개의 이파리만으로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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