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시 영웅을 읽다
시가 땡긴다. 땡긴다는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 끌리다.'를 뜻하는 당기다의 경상도 사투리다. 내가 굳이 당긴다를 두고 땡긴다를 쓰는 이유는 당기다는 말이 성에 안 차 서다. 바꿔 말하면 땡긴다가 나를 흡족하게 하기 때문이다.
책장 앞으로 가 손을 뻗어 시집을 꺼내든다. 손에 잡힌 것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이원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다. 아무 쪽이나 펼쳐 읽는다. 제목은 영웅이다.
영웅
오늘도 나는 낡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짜장면을 배달하지
왼쪽으로 기운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나의 생이야
기운 것이 아니라 내 생이 왼쪽을 딛고 가는 거야
기운 쪽이 내 중심이야
이하 생략
오토바이가 기운 것이 아니라 아니라 나의 생이 기운 것이라는, 나의 생이 기운 것이 아니라 내 생이 왼쪽을 딛고 가는 거라는, 기운 것이 바로 나의 중심이라는, 시인의 말이 가슴에 착 달라붙는다. 침을 바른 우표처럼.
가슴에 우표 몇 줄 붙었으니, 편지봉투가 차에 실려 가듯 나도 시에 실려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편지봉투는 겉면에 적힌 목적지로 배달될 것이 뻔하지만, 내 가슴엔 목적지가 적혀있지 않다. 그래서 어디로 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내가 도착하게 될 곳은 분명 처음 가보는 낯선 곳일 테니, 가슴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출렁거린다.
중심이 기울었으면, 누구든 삐딱하게 살 수밖에 없지 않나. 내가 왜 삐뚤빼뚤 돌고 돌다가 이제 여기에 도착했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빼뚤삐뚤 돌고 돌아 여기 온 이유가 내 삶의 중심이 삐딱해서라는 것이다. 삐딱하지 않으면, 빨리빨리 직선으로 곧게 살아 지금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여기가 아닌 곳이 어떤 곳이며 거기서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지도 못하겠다.
나는 지금여기의 내가 좋다. 지난날의 나는 내 중심이 곧고 올바르기를 원했지만, 이젠 아니다. 내가 딛고 있는 중심이 삐딱해서 좋다. 삐딱빼딱 가다가 내가 언제 어떤 곳에 도착할지 알 수 없어서 좋다. 삐딱하게 살아서 삐딱한 곳에 도착하여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저녁놀은 어떤 빛일까?
삶의 기울기와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유일무이한 나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삶의 삐딱한 중심에 있다. 한데 삐딱하게 기운 지구에서 사는 우리가 기울지 않으면 어떻게 똑바로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삶의 삐딱한중심을 바로 세우려고 애쓰지 않고 그대로 둘 것이다.
그 대신 내가 땡기는 것을 따라갈 것이다. 오늘 아침에 나는 시에 땡겨 시를 읽었지만 다른 사람은 시가 아니라 다른 것에 땡겨 다른 것을 할 것이다. 혹 누군가가 시에 땡겼다 하더라도 이원의 영웅을 읽겠는가. 읽었다한들 이런 글을 쓰겠는가.
우리 각자는 다르지만 삶의 중심이 삐딱한 것은 닮았다. 그래서 우린 서로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살 맛이 나기도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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