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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13. 2024

[100-9] 무얼 바라보고 있나요?

곰과 수레/ 앙드레 프레장 글 그림

곰과 수레/ 앙드레 프레장 글 그림


곰은 매일 아침 행복했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빈 수레를 주운 뒤에는 하루 종일 빈 수레만 생각하거든요.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대신 곰은 왼손으로 수레를 끌면서 오른손으로 물건을 주워 담거든요. 수레에 가득 물건들이 찼어요. 그래도 물건을 줍느라 허리를 펼 시간도 없죠. 수레에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만족스럽지 않거든요. 


우리도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일보다 빈 수레에 더 마음이 다 있진 않을까요? 저의 시선도 곰처럼 빈 수레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빈 수레에 잡다한 물건을 채우려고 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채우려고 할수록 빈 공간이 늘어나는 수레를 끌고 다녔어요. 언제 이 수레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무엇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날마다 궁리하면서 낯선 거리를 배회했지요.


어느 날 곰의 수레가 부서졌어요. 짐이 너무 무거웠어요. 근데 곰은 물건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해요. 물건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물건을 주우러 다녀요.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도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도 듣지 못해요. 


저는 제 수레가 무거운지 몰랐어요. 그냥 낑낑대며 수레가 차길 바라며 끌었죠. 수레에 짐이 얼마나 찼는지도 제가 망가지는지도 몰랐어요. 마음이 온통 수레에 가 있었으니까요. 저는 어느 날 수레를 내팽개쳤답니다. 곰이 "조심해. 나무가 쓰러져."라는 종달새의 소리를 듣고 수레를 내팽개치듯 말이에요. 제겐 종달새는 없었어요.  어떤 종달새가 와서 수레를 내팽개치라고 해도 저는 듣지 않을 거예요. 제겐 제 마음이 종달새였어요. 더 수레를 끌다간 살다 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어쩌면 세상 모든 것과의 작별을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수레를 내팽개친  곰이  하늘과 나무와 종달새를 올려다보았답니다.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곰이 너무나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듯 저도 제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제 마음의 하늘에 해가 떠오르고 있었어요.  수레가 없으니 무거운 짐을 끌 필요가 없네요.  지금부턴 마음속에라도 꽉꽉 채우진 않을래요. 헐렁헐렁한 옷을 입으면 몸이 편하고 마음이 헐렁헐렁하면 삶이 편하겠죠. 곰은 좋은 날이 돌아왔어요라고 노래하는 종달새를 따라 걸어가며 행복을 느껴요. 내일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하늘을 올려다볼래요. 그리곤 노래하는 종달새 내 마음을 따라 걸어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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