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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18. 2024

[100-14]너덜너덜 껍질을 벗는 나무

성장하고 있는 증거야

퀸스로드공원에 도착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자동차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유튜브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찾아 틀었다. 새소리가 멀리서 들리다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진짜 숲에서 나는 소리 같다.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시작했다. 


한발 한발 발바닥에 집중한다. 근데 눈길이 느티나무 둥치에 가서 멈춘다.  껍질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했는데, 나는 느티나무 껍질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다시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나무껍질을 살펴본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껍질이 벗겨지고 있다.  나무는 껍질이 단단하다. 그래서 나무의 몸집이 자라면 껍질이 터지면서 벗겨져 나간다. 나무껍질이 지금까진 나무를 보호해 주었지만, 성장한 나무가 껍질을 벗겨내지 않으면 더 이상 자랄 수 없다. 그리고 껍질을 벗겨낼 때 껍질에 붙어있는 해충이나 해충의 알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나무가 껍질을 벗고 성장하듯 우리도 껍질을 벗어야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정반합의 원리다. 정이 있으면 반드시 반이 있다. 정과 반이 만나 합을 이루면 이 합은 정이 된다. 새로운 정이 정체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정에는 또 반이 있다. 그래서 고정된 정이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도 완벽할 수도 없고 항상 옳거나 정의로울 수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도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 나란 껍질을 자주 벗겨내야 한다. 나무껍질은 죽은 조직이라 터지거나 벗겨져도 나무가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의 껍질을 벗어내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고 때론 성가시게 느껴진다. 이젠 쓸모없는 껍질이 되어버렸는데 우리는 여전히 보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벗겨버릴 수 없기도 하다. 느티나무 껍질을 보며 생각해 본다. 저 너덜너덜 달린 껍질은 느티나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가끔 내가 껍질이 너덜너덜 달린 느티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나의 껍질이 벗겨나가는 중이니까, 조금씩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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