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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27. 2024

[100-23] 사물의 쓸모

아저씨 우산/ 사노 요코

사노 요코의 그림책 '아저씨 우산'은 비가 와도 우산을 펼쳐 들지 않는 아저씨 이야기야. 아저씨에겐 아주 멋진 우산이 있었어. 아저씨는 외출할 땐 우산을 가지고 갔어. 비가 오나 오지 않거나 언제나 말이야. 그래도 우산을 펼진 적은 없어.  멋진 우산이 젖으면 안 되니까. 비가 굵어지면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잠시 기다리고 비를 뚫고 가야 할 땐 우산을 꼭 껴안고 갔어. 아저씨는 비가 계속 오면, "잠깐 실례하겠소이다. 저기까지 같이 쓰고 갑시다." 하면서 다른 사람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집 밖에 나가지 않았대. 창 밖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쓴 우산이 뒤집히는 것을 볼 때면, 밖에 나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어느 날 공원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비가 내렸어, 남자아이가 나무 밑으로 뛰어와 우산 좀 씌워달라고 했어. 아저씨는 못 들은 척했어. 역시 소중한 우산이 젖으면 안 되니까. 우산을 쓴 여자 아이가 남자아이에게 씌워줬어, 둘은 우산을 쓰고 가며 노래를 불렀어.


비가 내리면 또롱또롱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참방 참~방


아저씨는 이 노래를 따라 불렀지. 그러다가 우산을 쓰면 정말 그럴까 궁금해졌어. 아저씨는 우산을 펼치고 빗속을 걸어가 봤어.  정말 또롱또롱 또로롱 소리가 났어, 참방참방참~방 소리도 났어. 집에 돌아온 아저씨는 우산을 접으며 말했어, "젖은 우산도 나름  괜찮군. 무엇보다 우산다워서 말이야."


나도 이런 적이 있었지. 예쁜 그릇을 샀어. 손님이 오면 사용하기 위해서야. 손님이 자주 오는 건 아니잖니? 그래서 몇 번 안 쓰고 몇 년이 훌쩍 지나갔지. 그릇이 좀 후져 보였어. 유행이 지나갔거든.  아직도 새 그릇인데 손님이 올 때 사용하기엔 적당하지 않았어, 그래서 꺼내 날마다 사용했어. 기분이 좋진 않았어. 손님이 사용하기에 좋지 않은 건 가족이 사용하기에도 좋지 않잖아.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 손님보다 소중한 가족을 위해 가족이 매일 사용할 예쁜 그릇을 샀어. 그랬더니 마음속에 또롱또롱또로롱 소리가 나더라. 때론 참방참방 참~방 소리가 나기도 하고. 


우리가 어떤 물건이던 필요한 곳에 사용하지 않으면, 있어봤자 소용이 없잖아. 이건 그릇이나  아저씨 우산 같은 물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 같아. 아저씨 우산처럼,  나 자신도  너무 소중하니깐.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몸과 마음을 사리고 있었나 봐. 우산이 비에 젖고 젖어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이  가장 우산다운 거겠지? 그릇도 자주 사용하다가 금이 가고 깨지기도 하는 것이 더 그릇다운 것일 테고. 그러면 나도 무언가를 하다가 아파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이 더 나답지 않겠어? 그러니까 나의 쓸모를 찾아 사용하고 또 사용하는 것이 나답게 사는 걸 거야. 때론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 또랑또랑또오랑 혹은 참방참방 참~방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순간도 있을 테지. 그래서 난 아픔이나 고통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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