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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Mar 30. 2024

[100-26] 나는 내게 시한부 삶을 선고했다

그동안 멋대로 살아라

나는 내게 15년 시한부 삶을 선고했다.   

  

나에겐 질병이 있다. 병원 의사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내 질병은 인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노화다. 노화의 끝은 죽음이다. 지금 노화를 젊음으로 되돌리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머잖아 노인을 20대의 몸으로 되돌릴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런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고혈압도 당뇨도 없고 관절이 아프지도 않다. 70세인 나는 건강한 편이다. 그런데 “왜 내게 15년이란 시한부 삶을 선고했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내게 선고한 시한부 삶 15년은 의사에게 2-3개월 혹은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에겐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부럽고도 부러운 15년일 것이다. 내가 살아온 날은 칠십 년이나 된다. 참으로 긴 세월이다. 이렇게 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살아갈 날은 길어야 30년일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온 날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 또 사람이 늙으면 제대로 활동을 못 하니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앞으로 15년 정도는 내가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정한 것이다. 85세까지 건강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85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 같이 살아가려면 운동과 식생활 등을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15년 이후에도 살아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 일은 그때 맘이 내키는 대로 할 것이다.

       

내가 내게 시한부 삶을 선고한 이유는 칸트가 죽기 전에 한 마지막으로 한 말과 관련이 있다. 칸트는 죽기 전에 하인 람페에게 와인을 달라고 했다. 와인을 마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좋아!”였다고 한다. 나도 죽을 때 “좋아!”란 말을 하고 싶다. 지금껏 잘 살아와서 좋고 나를 찾아온 죽음이 좋아서 말이야. 지금 내가 죽는다면 진심으로 “좋아.”란 말을 할 수 있을까? 없다. 제대로 살지 못해서 아쉽고 안타깝다. 나는 이런 내 마음을 흡족하게 바꾸고 싶다.    

       

요즘 나의 화두는 죽음이다. 나는 죽음 앞에서 “좋아.”가 아니라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수 있어도 행복하겠는데. 15년 동안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잘 모르는데. 예전에는 예전의 상황에서 70살이 된 지금은 지금의 상황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내가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많지 않다고 하면, 사람들은 “요즘은 100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은데.”라며 웃는다. “2~3개월 혹은 6개월 시한부 삶도 아닌데. 뭐 그리 심각하냐?”라고도 한다. 나는 심각하다. 내가 10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른다. 100세까지 산다고 한들 그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문제는 삶의 질에 관한 것이다.     


내가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 물을 얻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팠다. 근데 나는 물이 한 방울도 없는 땅에서 온 힘을 다해 삽질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물을 못 만들었다. 이젠 물이 펑펑 쏟아질 땅을 찾아 파고 싶다. 내가 물이 펑펑 쏟아질 땅을 찾아내기까지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텐데. 그 땅을 찾고 나서 땅을 파기 시작하고 물줄기를 찾고 물이 펑펑 쏟아질 우물을 만들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나. 근데 내게 그런 시간이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심각하다. 지금 나는 물줄기만 찾아도 흡족하겠다.    

 

도서관에서 내 삶의 물줄기를 찾기 위해 죽음에 관한 책들을 빌려왔다. 엉뚱한 곳에서 삽질하지 않기 위해서다. 노인이 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방법과 또 죽음 앞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내가 이 책들을 읽는 것은 나를 위해서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만약 내가 찾아낸 방법을 글로 써서 책이 된다면,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것도 나를 흡족하게 해 줄 하나의 일일 것이다.  근데 나는 아직 내가 나를 과거의 말뚝에 묶어두고 있다. 나는 나를 과거의 말뚝에서 풀어놓아 주고 싶다. 풀밭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염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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