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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수 Apr 08. 2024

[100-35] 누워서 빈둥거리다가 얻은 글감

'아침햇살'

“김상중 씨는 본인이 대략 몇 살이라고 인지하세요?” 이 말은 마인드마이너 송길영 씨가 어쩌다 어른 강의를 하다가 감상중 씨에게 한 질문이다.


아침에 잠을 깼다. 몸이 찌뿌둥하고 머릿속이 맑지 못하고 흐릿했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들었던 까닭일까? 팔다리를 뻗치며 스트레칭을 해도 일어나기 싫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뭐라도 유익한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송길영 씨의 강의를 시청한 것이다.


"저는 마흔다섯 살 이후로 나이 세는 것을 잊었어요."라면서 누군가가  나이를 물으면 "아침 햇살이에요"라는 김상중 씨의 대답에 방청객들이 모두 웃었다.


아침햇살이란 말이 귀에 들리자마자, 내 마음은 십몇 년 전에 갔던 그 막걸릿집으로 날아갔다. 아침햇살이란 말이 타임머신의 스위치인가!  그날은 대구수목원에서 자연지도자로 봉사하는 선생님들과 어느 산으로 식물답사를 갔다. 헤어지기 아쉬워 누군가가 막걸리를 한 잔 하자고 했다.  한 분이 단골 막걸릿집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커다란 페트병에 든 '아침햇살'을 한 병 샀다. 아침햇살은 막걸리랑 색깔이 같아 술잔에 따라 놓으면 둘을 분간할 수 없다. 그래서 아침햇살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파전이랑 안주를 시켜 놓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햇살을 꺼냈다.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걸릿집에 웬 아침햇살인가!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래서 막걸리랑 색깔이 같은 아침햇살을 사 왔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행 중 한 사람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아침햇살을 달라고 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외부 음식을 가져와  먹을 수 없지만, 양해를 구하면 가능하기도 하다. 옛날 그 막걸릿집에서 아침햇살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일행 중 한 분의 단골집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막걸리를 마시며 그날 갔던 산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 잔 술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이 있었다. 차츰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나와 아침햇살을 달라던 사람을 가리키며 '아침햇살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에겐  '저녁노을파'라고.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사람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파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을 나눈 파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파가 생겨날 때마다 모두 손뼉을 치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이후 그날 함께 했던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아침햇살파' '저녁노을파'라고 말하면서 웃고 또 웃었다. 음료수 한 병이 주는 즐거움이 이보다 수 있을까?


"저는 나이 50살은 장롱 속에 넣어두고 왔어요. 너무 소중해서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어디선가 들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깔깔 웃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젊게 산다는 말이고 웃고자 한 말인데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 나이가 많아서일까? 나이가 많은 것이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것도 아니잖는가. 그러면 젊은것이 자랑인가? 젊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많아지는데.


가끔 나보다 나이가 많은 80대 후반이나 90대 노인을 만나면, 나이가 많아 부끄럽다고 한다. 또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한다.  나도 80대 후반이나 90살 너머까지 산다면 내 나이를 부끄러워할까? 오래 살아 미안할까? 나는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부끄럽진 않을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혹은 그때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고, 될 수 있으면 후회를 적게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불완전한 내가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를 묻는 질문에 김상중 씨의 대답 '아침햇살'은 참 위트가 있는 말이다. 내가 막걸리 집에 갈 때 아침햇살을 사간 것도 위트가 있는 행동이었던 것 같다. 한 동안 모두들 아침햇살 이야기를 하며  웃고 또 웃었으니까. '나도 위트 있는 행동을 할 때도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어 미소가 살짝 피어나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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