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본 후 생각이 났다.
며칠 전 영화 파묘를 봤다. 파묘를 볼 때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리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영화 한 편이 그냥 굿이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말에는 공감이 간다. 파묘를 보고 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대여섯 살 무렵 우리 집에서 굿을 했다.
내가 어린 시절엔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상생활에 수굼포(삽), 벤또(도시락) 등 일본어에서 나온 말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일본의 강점기를 겪지 않은 내게도 일본이라면 무조건 싫은, 반일감정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재산을 뺏긴 사람들과 강제 부역을 한 사람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얼마나 더 감정이 격하겠는가. 어떻게 해서 내게 반일감정이 생겼는지 모른다. 아마도 어른들이 일본 사람들에게서 겪은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자라서 일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겐 반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파묘가 그런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한 판의 굿이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 한 굿은 삼촌의 영혼결혼식이었다. 삼촌은 육이오 때 돌아가셨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청년이었다. 나는 자라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삼촌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때는 삼촌이 돌아가신 지는 몇 년이나 지나갔던 때였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점을 보았는데, 무속인이 삼촌이 돌아가신 것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죽었기 때문에 결혼을 시켜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촌의 영혼결혼식을 한 것이다. 무당이 죽은 처녀의 사주를 하나 구해왔다. 그리고 짚으로 인형 두 개를 만들었다. 나는 무당이 인형을 만드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짚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굿을 하는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마당에 친척과 동네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과 무당이 짚으로 만든 인형을 들고 춤을 추던 것이다.
할머니가 이 굿으로 위안을 받으셨을 것 같다. 할머니는 무속을 믿었으니까. 나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신 삼촌이 영혼결혼식을 통해 이생에서 못다 한 한을 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고 해서 상담을 받는다거나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지 않나. 아들 영혼결혼식이라는 굿을 하고 나서 할머니가 아들을 잃은 마음을 위로받고 좀 편하게 살 수 있었다면 굿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엔 우리가 우울하거나 슬퍼거나 마음이 많이 아플 때 상담을 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