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어두워지는 순간
21회 소월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있다. 2006년에 이 시집을 샀으니까 18년 동안 책장에 박혀있었다. 시집 속의 시들은 누군가가 펼치고 읽어주길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을까. 지금 내가 읽는 시는 2006년에 소월문학상 대상을 받은 문태준 시인의 ‘어두워지는 순간’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가슴속에 따스한 물결이 일렁일렁 일어났다가 가라앉곤 했다. 어두워지는 순간의 한 부분을 옮겨 적는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
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 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 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
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때로는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아파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문태준 시인은 ‘누군가가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 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이 아름다운 문장에 가슴이 감전되지 않을 수 있겠나.
나는 상상해 본다. 누군가가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과 나를 한 사발에 넣고 부드럽게 버무리는 것을 또 억세게 버무리는 것을. 돌이 들어 있는데 아무리 살살 버무려도 아플 수밖에 없다. 그가 나를 억세게 버무린다면, 나는 까무러치고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가 될 것이다. 나를 버무리는 그가 내게 친절한 성품을 가진 자일까. 그래서 내 돌을 빼줄까.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 봐야겠다.
아주아주 친절한 그가 있다고 치자. 그는 내 사발에서 돌을 빼줄 수 없을 것이다. 내 사발에서 뺀 돌을 누군가의 사발에 도로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돌이 자신의 사발에 넣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사발에 돌이 하나 더 들어오는 순간, 거세게 항의할 것이다. 내 돌만 해도 버거워 죽겠는데, 도로 가져가라고. 나도 그를 것이다. 우리는 돌이 없는 사발에서 버무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다.
해도, 꽃이 있어서 살만 할 것 같다. 꽃은 상처가 나면 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니까. 꽃잎에 상처가 나서 흘러내린 꽃물이 내게로 스며들 것이니까. 억세게 버무릴수록 내 향기도 그만큼 더 좋아질 것이니까. 누군가가 나를 억세게 버무릴 때 내가 꽃인지 돌인지 풀인지 흙덩이인지 분간할 수 없겠지만, 향기는 좋아질 것이 확실하다. 이 시는 우리가 이 세상을 편안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꽃이 있어서 아름답고 살만 하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시 '어두워지는 순간'을 읽을 때, 지나간 삶이 가슴속에서 머릿속으로 잔잔한 바람처럼 때로는 억센 바람처럼 몰려왔다가 사라지고 몰려왔다가 사라졌다. 내 삶의 사발 속에는 거친 돌이 들어있었다. 근데 하나도 아프지 않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인이란 존재는 우리 삶의 사발 속 돌을 빼고 살살 버무려주는 아주 아주 친절한 그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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