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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이 우리에게 준 유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고/ 청아출판사

by 할수 최정희


빅터 프랭클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해 보았다. 작년에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인 인문학향기충전소 작가님들과 함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었다. 이전에 읽을 땐 빅터 프랭클만 보였고 나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살아낼 수 있는지, 가슴이 아프면서도 놀라웠다. 이번에 작가님들과 함께 이 책을 읽을 땐 내가 보였다. 눈으로 마음으로 빅터 프랭클의 삶을 쫓아가는데, 머릿속에는 지나간 삶이 다큐멘터리처럼 상영되었다.


나는 스스로 절망의 수용소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똬리를 틀고 살았다. 빅터 프랭클이 강제로 가게 된 죽음의 수용소가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절망의 수용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절망적이고 비참했다. 내 절망의 수용소와 빅터 프랭클이 강제로 끌려간 수용소는 수용소란 점은 같지만 이 두 개의 수용소는 상반된 지점이 있었다. 상반되는 지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차점도 있었다.


빅터 프랭클은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갔고 나는 스스로 수용소로 걸어 들어갔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빅터 프랭클은 언제든 수용소 밖으로 나올 의지가 있었다. 반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자체가 없었다. 빅터 프랭클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말대로 내가 그처럼 살 수 없는, 그처럼 살지 못한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


갑자기 많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가장이 될 뻔한 상황이 닥쳤다. 소녀가장이 되진 않았음을 밝힌다. 고삼이던 어느 날 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고삼인 내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동생 다섯을 먹여 살려야 할 것 같았다. 내겐 그럴 힘이 없었다. 대신 꿈이 있었다. 소녀가장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릴 상황이 닥칠까 봐 오는 예기불안이 나를 덮쳤다.


꿈을 버리고 나를 버렸다. 대신 얻은 게 직장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직장일, 언제 벗어날지 알 수 없는 강제 노역이었다.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빅터 프랭클의 강제 노역이 서로 만나는 지점으로, 빅터 프랭크와 달리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 오는 절망과 낙담이 나를 짓눌렀다. 죽고만 싶었다.


빅터 프랭클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을 때는 학자였고 학자로서 꿈이 있었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언제 밖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추위와 병과 생사를 넘나들게 하는 학대는 물론 생존하기 위한 최소의 먹을 것까지 없는 상황, 게다가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누가 꿈을 실현할 기대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냈다. 결국 로고테라티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그의 정신력과 행동력을 감탄하고 존경한다.


빅터 프랭클과 달리 나는 추위를 막아주는 집이 있었고 먹을 것이 있었고 아버지는 병마와 싸웠지만 나는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학대를 하는 이도 생명을 위협하는 이도 없었다. 강도가 약한 강제노역이 있긴 했다. 그래도 수용소 출입문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를 바로 세우고 꿈을 실현할 방법을 찾지 않았다. 수십 년을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강물에 빠져 떠내려가듯 수용소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무엇이든, 어떻게 하면 될까를 생각하고 작은 일 하나를 하고 그 작은 일에 이어 다시 작은 일 하나를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거창한 것이 거창한 것을 만드는 줄로 알았기에, 작은 것은 하찮게 보여 모두 놓아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알겠다.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비가 되고 개울물이 되고 개울물이 강물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는 진리를. 절망수용소 생활이 죽고 싶었지 정말로 죽을 만큼 괴롭지 않았던 것을. 그래서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강제수용소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가둔 수용소 생활도 비참하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행복수용소, 친구수용소, 시댁수용소, 패션수용소 SNS수용소 등등 스스로 걸어 들어간 수용소가 있는가. 자신이 수용소에 갇혀있는지 모른다면 거기서 계속 살 수밖에 없다.


수용소에서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이 그럭저럭 살만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럭저럭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 삶이 행복하다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내가 나를 수용소에 가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알아차림이 있고 난 후 나는 수용소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 치열하게 공부했다.


세상에 수용소는 두 곳뿐이다. 스스로 가둔 수용소와 강제로 갇힌 수용소. 어느 수용소이건 빠져나오는 것은 힘든다. 어느 수용소이건 빠져나오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다.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빅터 프랭클에게 허락된 자유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해도 그는 그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우리도 삶이란 강제수용소에서 살지만, 빅터 플랭크에 비해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는 참으로 많다. 자신에게 어떤 자유가 있는지 알고 그 자유를 누리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쟁취해야 할 자유가 있다면 그 자유를 쟁취하려고 시도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절망의 수용소에서 살 때도 내가 누릴 자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내게 수용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할 자유가 있었는데, 그것을 몰라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서 살더라도 우리가 누릴 조금의 자유가 있다는 거. 그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간혹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거. 그래서 삶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거. 이것이 빅터 플랭크가 우리에게 준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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