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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껍질로 만든 꽃반지

소스라치게 놀란 일은 아니어도

by 할수 최정희

자연물로 공예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50대 후반에 숲해설가로 대구수목원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수목원에는 온갖 열매와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떨어져 있다. 저걸로 무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날이었다. 대나무 밑에 죽순 껍질이 수북 떨어져 있었다. 죽순 껍질을 몇 개 주웠다. 죽순껍질을 가늘게 잘라 머리를 땋듯 땋아서 동그란 반지를 만들었다. 작은 열매에 죽순껍질을 잘라 꽃잎을 만들어 반지에 붙였다 이 꽃반지가 내 첫 작품이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첫 생태공예작품 꽃반지를 다시 만들었다. 죽순껍질은 주운지 십 년이 넘었다. 까만 열매는 무환자나무 열매이고 노란 것은 은행알이다. 이것들도 마찬가지로 주운지 십 년이 넘었다.

이 반지를 동료 숲해설가들과 숲해설 참여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직무교육에 갔을 때 같은 숙소에 머문 동료 숲해설가에게 선물로 나눠 주기도 했다. 꽃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볼 때 뿌듯하고 기뻤다. 점차 토끼와 개구리, 곰, 사자, 돼지, 어린 왕자 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대구수목원에는 국화전시를 담당하는 분이 있다. 이 분은 지나가다 가끔 내가 만든 생태공예 작품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 날 올해 국화축제할 때 생태공예 작품 전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생태공예작품 전시회를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내가 스스로 창작해 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창작한 것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놀랐다. 이때가 2019년으로 5년 전이다. 이후 매년 전시회를 해야지 맘먹었지만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국화전시 담당자가 내게 부탁했다. 내년에 국화를 어떻게 전시하면 좋을지를. 지금 계획을 해야 내년 봄에 거기에 맞게 국화 종류를 선별해서 기를 수 있다고 하면서. 이 또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런 걸 배운 적이 없고 해 본 적도 없다며 사양했다. 이분은 생태공예 작품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자신은 식물을 기르는 일은 전공이라 잘할 수 있지만, 전시회를 더 잘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했다. 근데 그 능력이 내게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이 아니지만, 전시회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싶어서 다른 지역의 국화축제에도 가보았다. 분재는 대구수목원의 것이 가장 멋있었다. 각 지역의 국화축제는 엇비슷했다. 하나 같이 농사일할 때 입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몸빼처럼 촌스럽게 느껴졌다. 놀이 삼아 국화전시를 보러 갈 때는 마냥 좋아 보였는데 말이다.


담당자를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전체를 하나의 그림 혹은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주인공은 하나여야 하는데 모든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다. 전체적으로 산만하다. 국화꽃 색이 너무 알록달록하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면 배경색과 바탕색이 틔지 않아야 한다. 어떤 곳은 구조물을 약간 옆으로 옮기면 좋겠다. 등등. 담당자는 있는 캐릭터를 사용해야 하고 해마다 몇 개씩 늘려가기 때문에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다고 했다. 다음 해 수목원 국화전시는 전체적으로 색채가 잘 잡혔고 모든 면에서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내게 공간과 색채를 보는 능력이 좀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뿌듯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내 의견이 반영된 큰 전시이기 때문이었다.


'몰입'이란 걸 해 보고 싶었다. 이는 오래전 일로, 황농문 교수의 몰입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였다. 어떤 일에도 몰입할 수 없었다. 몰입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었다. 지난달 도서관에서 빌려온 틈을 내는 철학책(황진규, 철학흥신소)을 읽으며 내가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농문 교수가 말하는 몰입과 이 책에서 말하는 몰입의 의미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황진규 작가는 '행복하다는 것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라는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 언제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일어날까. 뭔가를 할 때다. 처음 해보는 일을 하다가 혹은 어떤 일을 몇 번 해보다가 '내가 이렇게 잘할 수 있다고!'라는 감탄이 일어날 때다. 바로 이때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다. 나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없다. 뭔가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무슨 일이든 몰입할 수 있었겠나.


소스라치게 놀란 일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몇 개 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대구수목원 국화전시를 도와주고 나서 '공간과 색채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조금은 있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녹색학습원에서 생태공예 가족 수업을 할 때 일이다. 담당자가 곤충 전시실에 전시해 놓은 것을 좀 바꿔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이때도 나는 해 본 적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이 담당자도 나는 할 수 있을 거라며 재차 부탁했다. 재료는 재활용이고 인건비는 실비만 줄 수 있어 미안하다며.


딸을 데리고 가서 작업을 했다. 딸과 함께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된 조화와 인조 풀과 곤충을 모두 꺼냈다. 조화의 큰 꽃잎을 뜯어냈다. 가위로 일일이 오려 다시 붙였다. 인조 풀포기는 잘게 나누고 긴 잎은 짧게 넓은 잎은 좁게 잘라 새로 붙였다. 곤충의 자리도 재배치했다. 작업이 끝난 후 담당자는 훨씬 보기 좋다며 어떻게 이리할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느 해 대구시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들이 만든 여러 종류의 작품을 전시할 때였다. 전시물 속에는 우리 팀과 수업한 자연물 공예 작품도 있었다.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생각하고 실제로 전시하는 일은 즐거웠다. 작품만 전시하니 공간이 허전했다. 청소년의 집에 있는 인조목 하나를 가져왔다.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잎을 다 떼고 가지를 많이 잘라냈다. 잎을 하나씩 가위로 오려서 가지에 다시 붙였다. 이 인조목을 세워 놓았더니 전시장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이때도 담당자들이 우리끼리 했으면 이렇게 할 수 없었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연물로 작품을 만들 때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화전시든 작품전시든 이런 일은 내가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하는 팀에서 봉사를 해도 너무나 좋겠는데. 전공한 분야도 아니고 이런 일을 해온 적이 없으니까. 누가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겠는가. 더구나 나란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말이다. 우연히 하게 되었는데 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조금은 소질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일 뿐.


자연물공예는 좋아서 스스로 시작한 일인데 여러 번 하다 보니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자연물공예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고 맘먹은 적도 있다. 아직 내지 못했다. 몰입을 안 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공간과 관련된 일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 하지 않아 나중에 아쉬움이 생길 일 혹은 후회를 할 일이 있는지 살펴본다.


어떤 이가 다른 사람에게 전혀 배우지 않고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면서 할까 말까 조언을 구한다면, 꼭 그걸 하라고 할 것이다. 바로 앞 이 문장을 적는데, 피스토리우스가 데미안에게 한 말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나한테 이야기했지. 음악을 사랑하는 건 음악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야 아무래도 괜찮아. 하지만 자네 자신이 도덕주의자가 아니기도 해야지!"


이 문장이 내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라고 권하면서 자신은 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면 네가 생태공예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야. 도덕적이지 않은 음악을 좋아하면서 도덕주의자로 사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가슴이 뜨끔하다. 모순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나를 모순적으로 살게 하지 않기 위해서 생태공예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또 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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