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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 왜 그리 안 믿으세요?

한글교실에서

by 할수 최정희

한글반 수업 중이었다. 한 노인 교육생이 앞으로 나왔다. 얼굴을 보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선생님, 아파서 집에 가야겠어요.".

“어디가 아프세요? 그럼 병원에 한번 가보세요."


교육생은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앉아있던 교육생이 뒤들 돌아보며 말했다.


"병원에 가도 소용없다. 친구가 손이 저려서 병원 갔는데 주사 한 방 주고 약만 처방해 줬어. 그게 다야. 뾰족한 수가 없대."


라며 집에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있는데. 아픈 교육생은 도로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 넣었던 공책과 책을 도로 꺼냈다.


"손만 저리다면 다행이겠지만, 나이도 있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우리가 알 수 없잖아요. 병원에 함 가보세요. 몸이 아픈데 공부가 되겠어요? 더 아프면 어떡해요?"


아픈 교육생은 앞자리 교육생을 보며 머뭇거렸다. 모든 교육생이 이들을 바라보았다. 앞자리의 교육생이 또 말했다.


"자기가 건강관리를 못하니까 내가 답답해서 그러지. 집에 가봤자 뾰족한 수 없다니까. 손이나 주물러."


라며 아픈 교육생이 집에 가는 것을 말렸다. 나는 다시 말했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의사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겠냐며 자신이 알아서 집에 가든 병원에 가든 해야 한다고. 집에 가기를 말리던 앞자리 분이 다시 말했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안 하니까 내가 답답해서 그랬다. 자기가 관리 좀 해봐라. 내가 이런 말 하나?"


앞자리 교육생은 당당했다. 몸이 아픈 교육생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내게 눈인사를 하고 교실에서 나갔다. 이 몸이 아픈 교육생이 나가자 앞자리 교육생은 큰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건강관리 잘해봐라. 내가 이런 말을 하나?"


아파서,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글자 몇 개 더 배우는 일이 아닐 텐데. 지금이야말로 아픈 교육생이 자신의 몸을 관리해야 할 시간인데, 앞자리 교육생은 자기 관리를 못 하도록 막았다. 아픈 교육생을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면박했다. 아픈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도 멋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일어난 일이다. 이 일은 앞자리 교육생과 몸이 아팠던 교육생과 내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다음날 수업에 집에 가기를 말리던 앞자리 교육생은 결석했다. 몸이 아팠던 뒷자리 교육생은 수업에 나왔다. 이 수업에서 동시 목련꽃을 받아쓰기를 하기로 하고 연습할 시간을 줬다. 이미 책을 산 사람은 책을 보고 연습했다. 책을 사지 않은 사람은 노트를 꺼내 필기해 둔 목련꽃을 보고 연습했다.


뒷자리 교육생은 노트에 필기해 둔 것을 찾지 못했다. 내가 노트를 받아 들고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시간에 필기해 둔 것이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받아쓰기 연습을 해야 하니까 내가 공책에 목련꽃 동시를 재빨리 썼다.


다다음 날 수업시간이었다. 몸이 아팠던 뒷자리 교육생이 또 필기해 둔 목련꽃 동시를 찾지 못하고, 필기해 둔 것이 없다고 했다.


"다시 찾아보세요. 지난 시간에 써드렸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책을 펴거나 노트를 폈는데, 이분은 지난 시간에 내가 쓴 목련꽃 동시를 못 찾는 것이었다. 앞자리 교육생이 뒤를 돌아보며 또 나서는 것이었다.


"니는 필기해 둔 게 없잖아."

"지난번에 써드렸어요."

"니는 없잖아."


뒷자리 교육생이 노트를 펼치고 목련꽃을 찾는 동안 지난 시간에 써드렸어요.라고 앞자리 교육생을 향해 말했다. 앞자리 교육생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뒷자리 교육생에게 '니는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뒷자리 교육생의 노트를 펼치면서 목련꽃 동시를 찾아줬다. 이때 문득 지난 시간에 앞자리 교육생이 결석한 것이 떠올랐다.


"지난 시간에 결석하셨잖아요?"


내가 이 말을 하자 앞자리 교육생이 뒷자리 교육생을 향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니는 있으면 있다고 좀 하지? 왜 암말도 안 하노?"


그냥 앞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한 말을 하고 말았다. '니는 있으면 있다고 좀 하지? 왜 암말도 안 하노?'란 말이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또 건드렸기 때문이다.


"제 말을 왜 그리 안 믿으세요?"


앞자리 교육생이 고개를 숙이고 혼잣말을 했다. 다른 사람이 다 들리도록.


"공부 좀 더 했다고?"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앞자리 교육생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나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이 있고 이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떠넘기기도 한 적이 있다. 무슨 일이든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 때, 재빨리 인정하리라. 변명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리라.


'제 말을 왜 그리 안 믿으세요'란 내가 한 말은 그분이 잘못했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확인시켜 주는 말이었다. '제 말을 왜 그리 안 믿으세요'란 말을 하지 않아도 앞자리 교육생은 자신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교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그분이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앞자리 교육생과 약간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이를 되돌리기 위해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며 한 사람씩 가르쳐야 할 때, 제일 먼저 다가갔다. 이렇게 여러 시간이 지난 후 이분의 행동이 변화했다. 바로 이 분이 전에 올린 글 속의 눈빛이 달라진 교육생이다. 나이가 많아, 머리가 나빠서 못한다며 받아쓰기를 전혀 하지 않던 분이 지금은 열심히 한다. 숙제도 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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