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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과 디오게네스

몽돌이 내게 말했다

by 할수 최정희

몽돌 해변을 걷는다. 까맣고 동글동글한 몽돌이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 모습처럼 서로 비슷비슷하다. 각 몽돌의 서사도 비슷비슷하겠다. 큰 바위가 깨져 돌덩이가 되었을 거고 돌멩이가 되어 파도에 쓸리면서 닳고 닳아 작고 동글동글한 몸이 되었을 거니까.


몽돌을 몇 개 집어 들고 살펴본다. 몽돌들이 쌍둥이처럼 닮은 줄 알았는데, 모두 다르게 생겼다. 한 개는 길쭉 납작하게 생겼다. 다른 하나는 동글동글한 게 하얀색 반원 선이 그으져 있다. 다른 것들은 갈색 둥근 반원이 두 줄이 있나 하면 백 원짜리 동전처럼 동글한 선도 있다. 새알 모양으로 생긴 것과 갈색 반점이 있는 것도 있다.


사람마다 눈과 코 입이 다 다르게 생겼듯 자세히 보니, 몽돌도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서 마음과 몸이 아프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부대끼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 죽는다라고 뭉뚱그려 말해도 맞는 말이긴 하다. 실은 발이 아프다고 해도 각기 다른 이유로 다른 곳이 아프고 아픈 정도가 다르다.


몽돌의 서사도 이처럼 모두 다를 것 같다. 커다란 바위가 어떤 것과 부딪쳐 깨질 때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몽돌은 큰 충격을 받고 깨졌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부분의 몽돌은 금이 갈 정도의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후 또 충격으로 단박에 깨졌을 수도 있고 서서히 갈라졌을 수도 있다. 이때 돌멩이들은 뾰족한 손톱과 발톱을 흙 속에 박고 버티기도 하고 서로 부딪치면서 깨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속으로 삼켜야 했을 것이다.


몽돌들이 파도에 밀려 올라왔다가 굴러내려 간다. 바위였을 때 지녔던 마음의 근육이 모두 사라진 것 같다. 파도의 이치를 몸으로 익혀서일까? 무한 반복 구르는 삶을 차르르 차르르 가볍게도 노래한다. 깎이고 깨지며 닳고 구르는 각박한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음률을 익혔을까?


몽돌이 말한다. 파도는 몰아쳐 올 때마다 매번 달라져 있었다고. 파도에 몸을 맞추기 위해 엄청 애를 써야 했다고. 그러다 보니 파도의 음률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고. 바닷가에서 파도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몽돌의 운명이고. 바다는 파도를 치는 게 운명이라고. 몽돌의 모토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한다. 파도를, 바다라는 악기가 연주하는 음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고. 그 뒤엔 노래하며 춤을 추며 살기로 했다고. 구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태풍이 몰아쳐 올 때는 비보잉처럼 풀쩍 날아오르기도 한다고. 한번 신나게 날아오르고 나면, 몇 달은 거뜬히 살아지더라고.


몽돌이 이어 말한다.


"나를 내버려 둬. 파도에 맞춰 춤을 춰야 하니"


디오게네스다. 알랙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쬐게 비켜주시오'라고 한 디오게네스다. 나는 몽돌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몽돌을 밟고 지나가기가 미안해진다. 그대로 서서 나를 돌아본다. 지금 이 시간에도 파도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푸른 하늘과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와 몽돌과 바람과 따뜻한 햇살까지 모두 가져야 행복하다. 이 중 하나가 빠질수록 행복감이 낮아진다.


저 멀리 있는 둥그렇고 노랗게 빛나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이 수평선 하나로는 만족을 못하겠다. 눈을 감는 순간 사그라질, 빛나는 햇살과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과 쏴르르 몰려오는 파도와 바람과 수평선을 두 눈에 마음에 그득그득 담는다. 몽돌이 말한다.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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