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클레어와 함께 걷는다
나는 싱클레어과에 속한 새다. 알껍질을 깨고 바깥세상으로 나오고 싶은 새다. 내 안의 새, 데미안을 만나러 간다. 알껍질을 깨는 법을 배우려고 마음이란 자동차를 타고 간다.
마음에 시동을 건다. 부릉 부르릉 소리는 크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오늘은 데미안을 꼭 만나야겠다고 기대했건만, 마음이 허연 연기를 내뿜으면서 스르르 주저앉는다. 여러 번 어르고 달랬더니 겨우 시동이 걸렸다. 이제 됐다 데미안을 끝까지 읽어야겠다 다짐한다. 책을 펴고 읽는다. 행간 사이 숲길 저 말리 데미안의 뒷모습이 보인다. 데미안을 쫓아 달린다. 너무 빨리 달렸나? 숨이 차다. 덜커덩 마음 시동이 꺼져버린다. 책을 덮고 휴 한숨을 쉰다. 마음이란 자동차는 잡념을 쫓아가고 있다. 데미안을 만나러 가던 걸 까맣게 잊고서.
자동차의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자동차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가 운전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운전자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에 결함이 있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운전자가 운전을 잘하지 못하기도 하고 자동차에 결함이 있는 경우다.
사람은 마음이 없으면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한다. 사람이 어떤 일에 마음이 동하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강물도 건너고 넓은 바다도 지나간다. 마음이 그것을 해낼 에너지를 생성해 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기름이 가득 든 성능 좋은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이 적은 양의 기름이 든 낡은 자동차를 몰고 간다고 하자. 조금밖에 못 갈 것이다. 기름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고, 시동이 꺼져 버릴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어딘가가 고장 나 차가 주저앉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운전자까지 미숙하다면, 이런 경우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동차라면 돈을 들여 새 자동차를 사면 그만이다. 내가 말하는 마음 자동차는 돈이 많아도 새로 살 수 없다. 오래되어 미어지고 헤어져서 어디부터 수리해야 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마음 자동차를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어도 수리해서 쓸 수는 있다. 자동차가 고장 나 움직이지 않으면 고장 난 부속을 갈아 끼우면 듯 마음도 그렇게 하면 되니까.
나는 미숙한 마음 운전자다. 기름도 조금 들어있다. 그래서 자주 시동이 꺼지고 가다가도 멈춘다. 내 마음은 자주 수리할 수밖에 없다. 자주 기름을 넣을 수밖에 없다. 데미안을 만나러 다시 길을 떠나야겠기에 고장 난 마음을 수리공장으로 데려간다. 책이 마음 수리 공장이다. 책은 마음에 시동을 걸어주는 열쇠이고 마음 운전 강사이다. 또 마음을 달리게 하는 기름이다. 미숙한 마음 운전자 나는 운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마음 운전 강사 책에게로 간다.
싱클레어과 새 나는, 내 안의 새 데미안을 만나러 가는 길을 잃었다. 길을 찾기 위해 또 알껍질을 깨뜨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싱클레어를 따라 걷기로 했다. 싱클레어가 어떻게 해서 데미안을 만났는지, 알껍질을 어떻게 깨고 새가 되었는지 소상하게 알고 싶다. 그러면 내 안의 데미안을 찾으러 가는 길 그려진 지도 한 장 발견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갖고서. 내가 지도를 발견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있다.
헤르만 헤세는 책이 온갖 보물이 가득 넣어둘 수 있는 보물창고란 걸 알았을 것이다. 문장과 행간 사이에 나 있는 숲길과 들판과 강물은 보물을 숨겨두기 얼마나 좋은 장소인가. 그리고 행간 사이 넓은 바다에 보물선 한 척 띄우는 일은 헤세에겐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일일 것이다. 헤세는 분명히 독자들을 위해 데미안을 찾아가는 길을 그린 보물지도를 행간 숲길 어디에 혹은 바다의 보물선 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다.
나는 헤세가 마련해 놓은 내 안의 데미안을 찾으러 가는 보물지도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보물지도를 찾기 위해서 오늘도 싱클레어와 함께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