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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안에서

by 할수 최정희


지하철역에서였다. 앞서 몇 사람이 뛰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근데 문이 다시 열렸다. 앞서 가던 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며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도 종종 뛰어오는 사람을 위해 열림 스위치를 누르고 기다려 준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이렇게 기분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한글교실 수업을 끝내고 지하철역으로 왔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있었다. 얼른 탔다. 문이 닫히는 중이었다. 한 사람이 뛰어와 스위치를 눌렀다. 문이 도로 열렸다. 근데 이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내게 짜증을 냈다."같이 타고 가자고 소리쳤는데 왜 안 기다렸어요? 친구가 기다려서 마음이 바빠 죽겠는데."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쳤더라도 길을 가는 낯선 사람에게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일은 무례한 일이다. 가분이 나빴다. 내가 왜 이 사람의 짜증을 들어야 하나 싶었지만 덤덤하게 “못 들었어요.” 하고 말았다.


이때 나는 앞창이 긴 캡을 쓰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같이 타고 가자는 소리도 못 들었다. 나도 약속 시간이 빠듯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 설령 내가 그 사람이 뛰어오는 걸 봤어도, 소리치는 걸 들었다 해도 내가 바쁘면 그냥 가는 거지. 시간이 넉넉하면 기다려 줄 수도 있고. 내가 그 사람 요구를 들어줄 의무는 없으니까.


이 일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이었다. 집에서 일찍 나왔기 때문에 마음이 여유로웠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뛰어가 스위치를 눌렀다. 문이 열리지 않고 올라가 버렸다. 타지 못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스위치를 눌렀던 사람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주면 되는데 안 기다려준다고. 그러면서 앞서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을 모두 몰염치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모두 동조했다. 스위치를 늦게 눌러서 엘리베이터가 그냥 올라간 것일 수도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자기만 아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빴다. 이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출근 시간이 달랑거릴 때였다. 지각할 것 같아 마음이 동동거리는데, 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늦게 도착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가 열림 스위치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한 사람이 탔다. 엘리베이터에 늦게 탄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나는 지각하고 말 것 같아 정말 속상했던 일과 저번에 안 기다려준다고 화를 내던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한 마디하고 말았다. “네~ 기다려주면 좋지요. 하지만 회사에 지각할 것 같을 때, 기차를 놓칠 것 같을 때 기다려 줄 수 있겠어요? 그냥 가야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동조하던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이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사간에 여유가 았을 땐 기다려 주고 바쁠 땐 그냥 갔을 것이다. 늦게 오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도록 안 기다려주는 것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럴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사람, 그 자신은 항상 기다려주었을까? 한 번도 급한 일이 없었을까? 그래서 사람에겐 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이 사람들이 한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없을까하고. 지난날 옳다고 생각하고 했던 일이 내 입장에서만 보고 말하거나 행동한 일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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