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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투쟁한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데미안을 읽고 1.

by 할수 최정희

언젠가 딸과 이야기할 때였다. 내가 '나는 싱클레어과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딸이 자신도 싱클레어과 사람같다고 했다. 모전자전이다. 어찌겠나! 생긴 대로 살 수밖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싱클레어과 사람에겐 필독서가 아니겠나. 싱클레어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내 속의 나를 바라보기로 한다.



1. 나는 투쟁한다, 거울 속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나 자신이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는 감히 부를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으며, 아직도 그렇다. 그러나 이제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는 않는다. 나는 내 피가 몸속에서 소리 내는 가르침을 듣기 시작하고 있다. (데미안/2024년/ 민음사)


나도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가방끈이 짧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싱클레어와 달리 노인 된, 이제야 내 속의 피, 가슴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별을 쳐다보거나 책을 들여다보며 찾지 않은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노인이 된 후 데미안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놀랐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 완전히 나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그곳에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데미안/2024년/ 민음사)


내가 놀란 이유는 싱클레어가 자신 속의 가장 훌륭한 존재와 완전히 일치했을 때가 이제 막 모습을 갖춰가는 파릇파릇한 나무 같아서다. 자기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그 존재와 합치하기 위해 싱클레어가 벌인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나는 자신과 그렇게 치열하게 싸운 적이 없서서다.


그래도 서두에 '내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꾸며낸 이야기처럼 달콤하거나 조화롭지 않다.'라고 한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나와 대면하기 위해 나 자신 앞에 놓인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되돌아 섰다. 과거에 느꼈던 부끄러움과 창피함,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과 두려움과 불안한 정서들이 혼합되어 생겨난 무시무시한 괴물이 거울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더는 자신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서' 이 괴물과 싸워 이겼고 거울 앞에서 바라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울 속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의 알껍데기를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데미안/2024년/ 민음사)


나도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 자신이 되지 않은 상태는 너무나 괴롭다. 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투쟁한다. 싱클레어처럼 나 자신이 되지 못할지라도, '출생의 잔재, 시원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임종까지 지니고 갈'지라도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러는 건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 때문일까? 나 개인의 숙명일까?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거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내가 만들어낸 괴물과 투쟁한다. 알껍데기를 깨고 내가 되기 위해서, 거울 속을 들여다 보고 싱클레어처럼 거울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이 되려는 게 왜 이다지도 힘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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