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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키세스 군단

대구 향토 문학 읽기/ 시인 동주를 읽고

by 할수 최정희

시인 동주(안소영/창비), 이제 조금만 더 읽으면 끝인데, 눈물이 가려 읽을 수가 없다. 책 읽기를 멈춘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왜 눈물 흘리는지를.


시인 동주의 삶이 바람에 파르르 떨다 날아간 나뭇잎 한 장 같다. 동주란 나뭇잎을 날려 보낸 바람이 나의 가장 깊숙하고도 내밀한 곳, 심장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심장을 흔들린 것이다. 가슴이 쌰아 아파오면서 눈물이 난 것이다.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나도 바람에 파르르르 떨다가 사라질 나뭇잎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동주의 시 몇 개 외엔 동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주를 유명한 시인이 아닌 한 인간, 한 젊은이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말 시 읽기를 좋아하는 동주, 우리말 시를 쓰고 싶은 동주, 문학을 하면서 살고 싶었던 동주는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세상에서 살았다.


그 시절엔 하루하루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었을 것이다. 동주는 우리말 시를 쓰는 일이란 무거운 짐짝을 하나 더 등에 메고 살얼음판 위를 걸었다. 살얼음판 위에 올라갈 때 짐을 하나라도 더 버려야 살 수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맘만 먹으면 내려놓을 수 있는 그 무거운 짐짝을 하나 혹은 몇 개씩 더 등에 올려놓고 걷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져 간 젊은 이들이 보였다.


살얼음판 위를 걸으면서 쓴 동주의 시는 아름답다. 마음은 슬프고 애잔하고 아리다. 동주의 시는 동주의 삶을 이 세상에 남겼다. 그리고, 이름 없이 흔적 없이 사라져 간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삶의 흔적까지 남겼다.


요즘 부쩍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우린 모두 자신의 삶만 해도 버겁다. 근데 거기에 세상을 위한 짐짝 하나 더 보태 메고 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꾸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도 지금이 살만 한 세상인 것이 그들 덕분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데, 키세스 군단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한 교수가 말했다. 이들 젊은 키세스 군단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가 망할까 봐, 나라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를 밤새워 가며 지키고 있는 거라고. 이 말을 들을 때도 눈물이 났다. 이 세상엔 아직 먹고사는 문제로 생사가 오가는 이가 있다. 동주가 맘껏 우리말 시를 쓰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았듯,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원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다.


동주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시대가 매몰차고 인정이 없었듯, 지금의 젊은이에게도 시대는 야박하다. 앞으로도 시대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를 쓴 동주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시를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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