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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백석이란 산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문학동네)을 읽고

by 할수 최정희

이 책은 백석의 생애 중 마지막 일곱 해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실과 작가의 상상을 더해 쓴 글이다. 기행은 시인 백석의 본명이다.


백석이라는 산에서 내려오는 중이다. 이 책을 읽은 지 나흘 째, 나는 아직 백석이란 산을 다 내려오지 못했다. 산엔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수월한데,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다. 길을 잘못 들어 수풀을 헤치고 나오듯 더 시간이 걸린다. 이 글을 쓰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기행은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와 분단을 겪었고 이후 고향인 북에서 살며 시를 쓰기도 하고 쓰지 못하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했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을 때 혹은 시를 못 쓸 때, 시인은 산다고 느낄까? 기행은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지 못했다. 아릿한 바람이 내 가슴을 한 바퀴 휘잉 돌고 나간다.


기행은 시를 썼다가 난로 속으로 던져 넣고 불태우기를 반복한다. 기행은 왜 불길 속으로 던져 넣을 시를 썼을까? 난로 속으로 던져 넣을 시를 쓸 때 마음은 어땠을까? 난로 속 불길에서 시가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생각한다. 시인으로 살려고 썼을 거라고. 살아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 썼다고. 시는 개조되지 않은 그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된 거라고. 그래서 그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태웠을 거라고. 그래야 내일에도 시를 쓸 수 있을 것이고, 내일, 또 내일에도 시를 쓸 수 있으니까. 그의 가슴을 빠져나가는 바람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을 거라고. 두 눈을 부릅뜨고 불타는 시를 응시했을 거라고.


기행은 그 옛날에 일본 유학을 가기도 하고 러시아어 등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시절이 따라 주지 않아 배운 지식을 활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아픔일까? 나는 이 아픔을 짐작을 할 수 없다. 나는 상황이 안 좋아 배울 수 없었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배우지 못해 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로 해서 겪는 아픔이든 아픔은 한 가지이니까.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없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어 내가 죽을 만큼 아팠던 것처럼, 기행도 시를 쓸 수 없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한다. 백석이란 아릿한 바람이 가슴속을 휘잉 감는다. 내려가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리는 산이 있다고 한다. 내겐 백석이란 산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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