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지리 이야기(조지욱, 사계절)를 읽고
문학 속 지리 이야기는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지리적인 위치와 기후 같은 자연환경과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이야기든 이야기는 지리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환경이라는 토대 위에서 만들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스무 개의 문학 작품 중 나는 플랜다스의 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플랜다스의 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할아버지 대신 우유통을 실은 수레를 끌던 네로와 개 파트라슈의 모습이 가슴에 흑백 판화처럼 찍혀있기 때문이다. 왜 네로와 파트라슈가 가슴속에 음각 판화처럼 찍혀 있는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책이 지리 이야기이니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한다.
조지욱 작가는 '네로는 왜 하루도 쉬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술한다. 네로 가 살던 곳 플랑드르는 벨기에 서북부에 있는 안트베르펜시다. 이 지역은 평균 해발 고도 50m로 저지대가 많고 해안 부근은 해수면 보다 낮은 간척지와 사구가 연이은 저지대로 해발 고도 5m도 안된다. 수 세기에 걸쳐 토지 개량 사업으로 농목지로 바뀌어, 소와 양을 키우는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이야기 배경 지역이 목축업이 발달한 곳이라, 우유를 배달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매일 5km 떨어진 안트베르펜 시내까지 우유를 운반하였다. 네로가 자라자 네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를 배달하는 할아버지를 따라간다. 처음엔 마차를 밀었을 것이고 차츰 끌기도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파 눕고 난 후에는 혼자서 끌어야 했다. 하루 일하면 하루 먹을 빵을 살 수 있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이었다.
사람이 가축의 젖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만 년 전에서 7천 년 때부터라고 한다. 사람은 양, 말, 낙타, 염소, 야크, 순록, 당나귀,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의 젖을 먹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우유를 하얀 독약이라 했다고 한다. 젖소에게 술지게미를 먹여 키우기도 하고 유통 기한이 지난 우유가 유통되기도 하고 가짜 우유를 팔기도 했다고 한다. 또 소를 불결한 환경에서 키워 병든 소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유를 냉장하지 않아 비위생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기들이 상하거나 비위생적인 우유를 먹고 병들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유가 유통된 까닭은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한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젖을 먹여야 하는 엄마들이 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유는 잘 상한다. 사람들에게 신선한 우유를 공급하려면 당시엔 매일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 살균처리하는 방법과 냉장시설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로가 매일 우유를 실어 나른 또 다른 이유는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그날 하루 먹고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로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네로가 어떻게 하여 화가를 꿈꾸게 되었을까? 먼저 우리나라 상황을 살펴보자. 한때는 아이들의 꿈이 프로운동선수가 되는 거였다. 그다음엔 아이돌이 되는 것이었고, 요즘엔 유튜버로 바뀌었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군이 바뀜에 따라 아이들 꿈도 바뀐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들에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네로가 살던 당시 폴랑드르는 화가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많은 화가 중에 네로에게 영감을 준 화가는 루벤스다. 루벤스는 왕족과 귀족의 호화로운 취미와 생활을 질 표현한 화가다. 루벤스의 그림 세계는 네로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아마도 루벤스가 속한 세상, 루벤스가 그린 그림 속 세상은 네로가 동경하는 세계였을 것이다. 네로는 화가라는 직업이 인정받고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네로에겐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었으니까, 화가가 될 꿈을 꾸었을 것이다. 네로는 화가가 되면 가난에서 벗어나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자 살자 운동해서 프로운동선수가 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네로에게 조금만 도움을 줬더라면, 화가로서 대성했을 텐데. 지금도 여전히 네로 같은 아이들이 있다. 옛날과 달리 복지혜택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상황을 매우 가슴 아프게 느낀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꿈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네로가 이야기 속 아이가 아니라 실존하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네로를 잊지 못하는 것은 꿈을 포기해야 할 상황인데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가기 때문이다.
네로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가난으로 인한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어린 나이에 외롭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다니던 성당 안에서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바라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죽는 네로의 모습은 장엄하고도 가슴 아팠다. 나는 네로가 가난한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 순교자 같았다. 네로가 죽음으로써, 살아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문학 속의 지리 이야기 ' 네로는 왜 하루도 쉬지 못했을까'를 읽고 나니,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를 실은 마차를 끄는 네로가 더 잘 보였다. 네로가 살았을 지역의 자연환경과 시대적 환경을 눈앞에 그릴 수 있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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