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1 세기 커피숍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최초의 분석을 찾아냈다. 181년에 출판된 그 책은 단지 현대적 커피숍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 그 자체의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 콘서트(팀 하포드, 웅진 지식하우스)
팀 하포드가 찾아낸, 커피숍 즉 스타벅스의 경영전략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는 리카도의 분석이다. 리카도의 분석은 지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리카도는 농사짓기 좋은 목초지와 농사짓기 아주 좋지 않은 초원과 그 중간쯤 되는 관목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예전에 학교에서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리카도는 희소성과 협상력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한다. 희소할수록 가격이 높아지고 또 희소한 쪽이 협상력이 더 있어 희소한 쪽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협상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지만, 쉽게 말하면 흥정이다. 협상은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하는 것이다. 흥정은 물건을 사거나 팔기 위하여 품질이나 가격 따위를 의논하는 것이다. 협상을 흥정이라고 할 수 없으나 흥정은 일종의 협상이다.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때다. 치매에 걸린 아흔 중반의 엄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나는 남한테 욕먹을 일은 안 하고 살았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나는 손해 보고 살았어."라는 말인데, 엄마는 이 말을 매우 자랑스럽게 한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서 일하셨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퇴직하시고 면사무소 건너편에 복덕방을 내셨다. 집과 논밭을 팔고 사는 부동산 관련 일과 면사무소와 경찰서 등에 필요한 서류를 대필해 주는 일도 하셨다. 그때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민원서류에 한자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게 부동산 매매 계약서, 혼인신고서, 출생신고서 같은 서류를 사 오라고 했다. 마침 내가 다니는 중학교 바로 길 건너에 부강인쇄소가 있었다. 인쇄소에 들어가면 찰거럭철거럭 인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벽면에는 금속 활자들이 꽂혀 있었다. 가끔은 벽면에 있는 활자를 하나하나 뽑아서 인쇄판에 놓는 것을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한 명과 같이 일했다. 아버지는 부동산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으면 이 할아버지에게 절반을 떼어 주었다. 아버지도 자신의 것을 챙기는 사람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때는 요새처럼 국가 자격증은 아니었지만, 관공서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복덕방을 할 수 있었다. 복덕방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도 아버지였고 사무실비 전화요금, 난방비, 손님 접대비 등을 모두 아버지가 모두 부담했다. 그 할아버지가 고객을 데리고 온 적도 별로 없다. 그 할아버지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는 고향 토박이이고 얼마전 까지 면사무소에 근무한지라 대부분이 아버지를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반반이라니! 심지어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식구가 둘 뿐이었다. 우리는 식구가 9명이나 되는데. 한 번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사무실비도 전화요금도 손님 접대비도 찻값도 다 아버지가 내는데 왜 반반 나누냐고. 그러지 말라고." 지금 생각하니 그때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말을 했겠나 싶다. 아버지에게 나의 이 말이 먹힐 리 없었다.
나도 엄마와 아버지와 비슷하게 살아왔다. 예전엔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땐 바가지를 많이 씌웠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깎아달라 못 깎아준다 하며 몇 번 오가다가 파는 사람이 이 밑으로는 못 판다 할 때 물건을 샀다. 상인은 손님이 이보다 더는 못준다며 뒤돌아서면 손해 본다면서 물건을 팔았다. 나는 이렇게 물건을 사는 일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부르는 대로 주고 샀다. 물건 살 때 적힌 대로 내기만 하면 되는 요즘 마트는 내게 천국이다.
나나 엄마와 아버지에겐 협상력이나 흥정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왜 협상력이나 흥정하는 능력이 이렇게도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것을 챙기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내가 대학교에 진학하고 꿈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포기한 것은 아버지의 병환 때문이지만 이런 부끄러움도 한몫했다. 자존감이 낮았던 것이다. 남의 욕 안 먹으려고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는 엄마나 일과 선심을 분간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자존감이 낮았던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데, 나는 없어도 된다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일 따윈 안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인데, 난 안 해도 된다며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일도 안 하기로 했다. 하지만, 또 나는 없어도 된다 하고 난 안 해도 된다며 살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하듯이 욕심도 부려본 사람이 잘 부린다. 욕심을 부려보지 못한 사람은 욕심을 부려봤자 욕심 근처에도 못 간다.
흥정이란 말로 인해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임대료가 비싸서 스타벅스 커피가 비싼 것이 아니라고 한다. 커피를 높은 가격으로 사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어서 임대료가 비싸다는 것이다. 임대료가 비싸건 싸건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살면서 제대로 욕심 한 번 부려봤으면 좋겠다. 요즘 어디 욕심부릴 때 어디 없나 찾아다니고 있다. 욕심 부리고 싶은 걸 찾기만 하면 욕심을 얼마큼 부릴지 재지 않고 냅다 부리고 말 것이다. 내가 욕심부릴 일 찾기만 하면 흥정 못하는 게 더 나은 능력 같다. 그래서 흥정 잘할 마음은 아예 버렸다. 내가 욕심부릴 만한 것만 찾으면 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 욕심 많이 부려 본 사람에게 사사라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