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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란 어떤 삶인지 나는 모른다.

by 할수 최정희

한 사람이 웃으며 "나는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굵고 짧게 살란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깔깔깔 웃었다. 나만 웃지 않았다. 그 사람이 이 말을 한 까닭이 나와 연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삼십 년 전 일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그 사람이 내가 육식과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우스개 삼아 한 말이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졸지에 가늘게 즉 소신 없이 비굴하게 사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건강을 생각해서 육식과 해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고기를 입 속에 넣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나는 안 먹다 보니 맛을 모른다. 그러니 먹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어떻게 참아요?"라고. 그 사람은 자기 입에 맛이 있으니까 그래서 좋아하니까 다른 사람도 맛있다고 느끼고 좋아하는 줄 안다. 내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참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기해한다. 이렇게 맛있는 걸 먹고 싶지 않다니 하면서.


며칠 전 나는 가늘고 길게 살기로 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현실을 다시 자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짧게 살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늘고 길게 살기로 한 순간 불현듯 타인에 의해 가늘고 길게 사는 사람이 되었던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마음이 상했던 까닭이다. 며칠 전 어쩌다 작년에 고인이 된 탤런트 김수미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김수미가 75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기사였다. 5년 후면 내 나이가 그렇게 된다. 내가 75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사려졌다.


지난 며칠 동안 너무 피곤했다. 며칠 내내 시간이 날 때마다 낮잠을 잤다. 저녁에도 자고 잤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면서 약국에 가서 피로회복제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와버렸다. 다시 나가기 싫었다. 저녁에 보니, 입술에 물집이 나있었다. 내가 피로한 것이 이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피곤하니 머리가 안 돌아갔다. 며칠 동안 책도 거의 읽지 않고 글도 안 썼다. 블로그 50 챌린지와 도전 100독 하는 중인데. 내가 조금 젊다면, 이 정도는 참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하겠는데, 나이 때문에 내려놓았다. 김수미 기사를 읽고 나서 조금 더 굵게 살려다가 너무 짧게 살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나는 태생부터 굵게 살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콩 이파리 같았어."라고. 콩 이파리 같은 몸으로 어떻게 이 세상에서 굵게 살 수 있겠는가. 장군감은 떡잎부터 다른데.


내가 20대 때엔 사람들이 코스모스 같다고 했다. 그땐 가을이면 코스모스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 이란 김상희의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말이 좋아 코스모 스지, 콩 이파리란 말과 다르지 않다. 콩 이파리와 코스모스 같은 연약한 몸속에 강인하고 담대한 영혼이 깃들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내가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조금 굵게 살아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젊을 때도 이것저것 하지 못했는데 노인이 된 몸으로 어떻게 이것저것 한꺼번에 할 수 있겠는가.


굵게 살려다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사라지느니, 차라리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세월 앞에 담대하지 못하면 뭐 어때? 시간 앞에 비굴해지면 어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타인에 의해였지만, 이번엔 내가 가늘고 길게 살기로 선택했다.


풍선 속의 바람이 빠지듯,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온몸의 모공으로부터 내게 허락된 시간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길게 살겠다고 정했지만,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늘게 살기로 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가늘게 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가늘고 길게란 말에 나는 위안을 받는다. 사실은 가늘고란 말이 아니라 길게 라는 말에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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