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교실에서
언젠가 나는 바지 안에 셔츠 왼쪽 자락을 집어넣고 한글교실 수업을 하러 갔다. 한 교육생이 셔츠를 잘못 입었다며 바지 속의 셔츠 자락을 빼라고 말했다. 나는 “네”하고 그냥 수업을 진행했다. 이 뒤에도 이런 일이 한번 더 있었다. 이때도 대답만 “네”하고 그냥 넘어갔다. 셔츠 자락을 치마나 바지 속에 넣어 입으면 신체 비율도 좋아 보이고 젊어 보여서 이렇게 입은 건데. 약간 당혹스러웠다. 이런 일이 몇 번 있고 나면 잘못 입은 게 아니라는 일부러 셔츠 자락을 바지 속에 넣어 입은 거라는 알게 되겠지 생각했다.
스타일리스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옷은 입기에 따라 완전 다른 옷이 된다고. 음식에 손맛이 필요하듯 옷을 입는데도 한 끗 손맛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면 양말을 긴 부츠 바깥으로 살짝 보이게 신는다거나 치마 아래 양말을 길이 대로 다 올려 신는 게 아니라 약간 주름지게 해서 신는다. 셔츠 단추를 목까지 다 채우면 답답해 보이니까 목 아래 단추 두 개 정도는 풀어두라고 한다. 이들 스타일리스트의 말을 다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개성과 날씨나 장소에 따라 적용하면 같은 옷이라도 더 멋있게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들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한글반 수업 때였다. 교육생 한분 한분 차례로 동화책 읽기를 봐주고 있었다. 내게 셔츠 자락을 빼라고 한 노인교육생의 차례가 되었다. 이 교육생 옆에 다가갔는데, 찌들어 상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숨이 턱 막혔다. 머리카락을 감지 않았는지, 머릿밑은 땀으로 축축하고 머리카락은 기름기가 배어 젖어있었다. 며칠 뒤에도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퀴퀴하고 찌든 냄새가 났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몃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서 이 교육생과 마주쳤다. 금방 지하철이 떠나간 터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교육생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축축했고 머릿밑으로 내려앉아있었다. 얇은 긴 셔츠를 입었는데 목 바로 아래 단추까지 다 채워져 있었다. “땀을 흘리시네요.” 하니까 요즘 땀을 많이 흘린다고 했다. ”그래요? 안에 뭐 입었어요?”하면서 나는 교육생의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어 보았다. 셔츠 안에 조금 두꺼운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셔츠의 단추를 모두 풀었다. 민소매 티셔츠 자락이 모두 바지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바지 속의 티셔츠 자락을 모두 빼라고 했다. “더운 날엔 이렇게 하고 다니세요.”라고 말한 뒤 바지를 만져 보았다. 두툼했다. “바지가 두껍네요. 얇은 바지 입고 다녀야겠어요.”
그리고 며칠이 흘러갔다. 이 교육생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땀에 젖어 축축했다. 안에 티셔츠를 입고 소매가 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지퍼를 올려 잠근 채로. 점퍼는 더우면 지퍼를 내리거나 벗었다가 추우면 지퍼를 올리거나 다시 입으면 되는데. 땀을 흘리면서도 점퍼를 벗지 않고 지퍼를 왜 다 채워 입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때도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에어컨을 켠 상태이기도 하고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인 내가 교육생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다. 이날도 역시 불쾌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물어봐야겠다. 더울 땐 점퍼는 벗고 추우면 입으면 되는데 왜 계속 입고 있는지를. 지퍼는 왜 다 올려 입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