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가방에 지갑을 넣는 행동에서

발견한 뇌의 두 가지 작동 방식

by 할수 최정희

8개월 된 아들을 업고 서문시장엘 갔다. 요새 에코백이라 불리는 모양의 가방에 손수건과 기저귀와 우유병과 지갑을 넣었다. 갑자기 손수건이 필요할 때 얼른 꺼내기 위해서였다. 무엇을 사려고 서문시장까지 갔는지 기억에 없다. 물건 값을 내려고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더듬더듬 지갑을 찾았다. 지갑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방 속에 있던 기저귀며 우유병을 모두 꺼냈지만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 가방 밑에 넣었는데.


집에서 시장까지 온 동선을 떠올려 보았다. 버스를 탈 때, 버스요금을 내려고 지갑을 꺼낸 기억은 있다. 그 뒤 지갑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참 후에야 아무런 생각 없이 가방 속에 지갑을 쑥 넣었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방 제일 위에 놓였던 지갑을 설핏 본 것도 같다.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생각도 못하는 후진국일 때였다. 기차역이나 시외버스정류장이나 시장에서 소매치기당한 사람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나오곤 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서 지갑을 훤히 보이게 가방에 넣어 두는 것은 도둑에게 가져가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 우리 뇌의 작동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동시스템으로 내가 버스비를 낸 뒤 지갑을 의식 없이 가방에 넣는 것 같은 행동이다. 다른 하나는 수동시스템으로 잡에서 나올 때 도둑맞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지갑을 가방 제일 밑에 넣는 행동 같은 것이다.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우리의 뇌가 자동모드를 사용하는 것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고 수동모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모든 일을 일일이 수동으로 작동시키면 에너지가 많이 들어 우리의 뇌가 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지 않는 일, 습관적인 일은 자동으로 알아서 처리한다고 한다. 나는 보통 잠금단추나 지퍼가 있는 가방을 갖고 다닌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그날은 입구를 잠글 수 없는 가방이란 걸 의식하지 못하고 평소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가방에 지갑을 넣은 것이다.


평소에 가방에 지갑을 넣는 행동은 위험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는 뇌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순간작동해 버린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자동모드는 직관적이고 빠르고 에너지를 절약해 준다. 하지만 내가 잠글 수 없는 가방에 지갑을 무심코 넣어 소매치기당하듯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날 내가 잠글 수 없는 가방을 들고나간 이유는 아들이 혹시 토하면 빨리 손수건을 꺼내 쓸 요량이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지갑을 도둑맞았다. 이후 아이를 키우는 동안엔 꼭 잠글 수 있는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내가 잠글 수 없는 에코백을 들고 다니며 지갑을 지키기 위해 수동시스템을 작동시켜 지갑을 가방 가장 밑에 넣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고 하자. 내 뇌는 이 결심은 기억하고 작동하기 보다 오랜 진화로 굳혀진 작동 방식인 자동모드를 재빨리 가동해 버리기 때문에 나로서는 손을 쓸 수 없다. 그래서 뇌의 자동시스템이 작동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방을 잠글 수 있는 것으로 바꾸면 애써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리의 습관은 대부분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습관을 바꾸려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수동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습관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뇌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을 더 충만하게 살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들이려면 거창한 목표가 아닌 아주 작은 목표, 우리의 뇌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1분 운동하기, 5분 책 읽기로 설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목표를 우리가 매일 하는 다른 행동과 연결시키라고 한다. 이를 트리거라 하는데 글을 쓰고 싶다면 책상 앞에 앉자마자 5분 글쓰기 이렇게 연결시켜 놓으면 더 습관을 쉽게 들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써야지라는 행동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는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다. 뇌가 나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인식하게 되면 뇌의 작동 방식이 수동모드에서 자연스럽게 자동모드로 넘어가 글을 쓰는 일이 수월해진다고 한다.


나는 운동을 매일 하는 습관을 갖고 싶은데 매일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쓰다 머리가 무거워지거나 잡생각이 날 때 물을 마시기 전에 운동을 한다를 목표로 정했다. 아직 습관이 되려면 멀었지만, 전보다 자주 3분씩 5분씩 케틀벨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짧은 시간 운동을 하는데도 했다는데서 오는 성취감이 있었다.


나는 '운동하기'보다 '운동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보다 '나의 몸을 돌보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기로 했다. 이후 아침에 눈을 뜨면 누운 채 음악을 틀어놓고 요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귀로는 음악을 듣고 몸은 요가를 하고 마음속으로는 나는 '나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되뇐다.


글을 쓰는 작가라는 정체성이 내 안에 자리를 잡았듯, 잠깐 동안이지만 지속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내 몸을 돌보는 사람'이란 정체성이 차츰 자리를 잡을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뇌의 수동모드를 의식적으로 가동하면서 운동을 계속해야겠다. 만약 내가 '나를 돌보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게 되었는데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뇌가 '나는 나를 돌보는 사람인데 왜 운동을 하지 않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 뇌가 배가 고플 때 밥 먹으라고 우리 등을 떠밀듯 '운동해야지' '운동해야지' 하며 운동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할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보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게 되면, 매일 운동하는 것이 밥 먹듯 당연한 일이 되면, 그날이 올 것이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운동이 고파져서 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되는 그런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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