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교실에서
동화책 읽기에 빠진 노인교육생이 있다. 이 교육생은 아침에 버스 하나를 놓치면 결석을 해야 하는, 농촌에 산다. 대구에 와서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 대구 시민이 아니어서 매번 신분증으로 표를 사야 한다.
한글반 교육생들은 60대 후반애서 90대 초반의 여성 노인 들이다 모두들 글자를 배우고 싶어 한다. 내용은 몰라도 좋다. 글자를 읽을 수만 있으면 된다. 한 글자 더 배우지 못해 애를 태우는 교육생을 바라볼 때마다, 안쓰러운 맘이 일어난다.
나는 이들의 글자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이해는 된다. 그래도 글을 읽으면 재미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뜻을 알면 삶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교육생들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냥 글자만 읽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우선 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 주려고, 나는 지인에게 그림책을 빌렸다. 복지관 캐비닛에 두고 수업 때마다 읽게 했다. 재미있다는 교육생이 있는 반면, 교재를 들고 ”이것만 하면 되지 왜 이걸 읽어야 되느냐? “고 불평을 하는 교육생이 있었다.
교육생 모두 교육부에서 만든 얇은 성인 문해력 교재 이외의 다른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이 교재를 만든 교육부가 못마땅하다. 보통의 사람들도 문장이 길면 이해하는데 어려운데, 평생 글자를 모르고 살아온 이들의 교재에 한 문장이 세 줄이나 긴 것들이 있고 어려운 한자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 읽는 재미에 빠진 교육생은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그때 얼굴에 난 상처가 낫긴 했지만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다. 걸음걸이도 절룩대지만 잘 웃는다. 의사가 살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살아서 공부하러 다니니 얼마나 좋으냐고.
멀리서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오는 것이 힘들어 보여 가까운 곳에 한글반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없다고 한다. 군청에 이야기하면 만들어 주겠지만 그곳엔 안 간다고 한다. 글자 모르는 것을 이웃이 알게 되는 것이 싶어서라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편지 온 것을 읽으라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글자를 모른다는 말을 할 수는 없고 읽을 수도 없어서 쩔쩔맸다고 한다. 다행히 남편이 읽어서 그 순간을 모면했다고 한다. 처녀시절에 학교에 보내 주지 않은 부모님에게 “결혼하면 친정에 절대 안 올끼다.” 화를 낸 것이 미안하다고 한다. 동네에서 몇 번이나 부녀회장을 하라는 걸 안 했다고 한다. 부녀회장은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있어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부녀회장을 일을 멋지게 해 나갈 성품인데.
그림책 다음엔 집에 있는 글자가 큰 이솝우화와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책을 사서 복지관에 가져갔다. 이 교육생은 걸리버 여행기가 너무 재미있다며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집에 가서 책을 읽고 온 교육생이 말했다. “선생님, 너무 재미있어 빠졌어요.” 다음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다. 책을 매일 읽고 싶은데, 농촌에서 사는지라 할 일도 많고 또 대문을 열고 살기 때문에 불쑥 찾아오는 이웃들로 해서 읽을 시간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나는 동화책 읽기에 빠져드는 몇몇 교육생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