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살맛 나게 해주는 존재랍니다.
며칠 전, 쨍쨍한 햇볕 아래 당신을 머리에 얹고 거리를 걸었습니다. 문득 '나 대신 온몸으로 뜨거운 햇볕을 받아내고 있는 당신이 몹시 괴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곧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태어난 이유 그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요. 내게 내리쬐는 햇볕을 대신 받아내는 당신에게 마냥 미안해할 일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당신 내부에서는 기쁨이 차오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페도라씨, 당신은 강렬한 햇빛으로 몸은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고유한 삶을 의미 있게 살고 있다는 충만함이 마음에 넘실거리지 않나요?
모자인 당신에겐 이토록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태어난 원인이 있을 뿐, 정해진 이유는 없으니까요. 사람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태어난 멋진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어 합니다. 그걸 다른 말로 '의미'라고 하지요. 사람은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아다니며 생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아 헤매지만, 의미는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살아온 발자국 위에서 피어오르곤 하죠.
나는 햇볕을 가려 줄, 아니 머리카락이 빠져 드러난 허연 정수리를 덮어 줄 모자를 찾으러 거리를 걸었습니다. 가게를 몇 곳이나 들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모자를 찾는 길이 아니라, 어쩌면 내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모자 하나 고르기도 이토록 어려운데, 인생의 많은 고비를 어떻게 넘어왔을까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웃음이 나더군요. 그러다 우연히 발길 닿은 대구 중앙로의 작은 구제 가게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빛바랜 옷들과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서 당신은 눈을 감고 앉아 있었지요. 잘 익은 밀이삭처럼 따스한 빛깔을 띤 당신의 챙을 손끝으로 쓸어보니, 까슬한 감촉 속에 오래된 시간의 냉기가 스며 있었습니다.
지쳐 있으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은 당신을 보는 순간,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찾고 있던 건 단순히 머리를 덮을 모자가 아니라, 시간을 품은 존재의 온기였다는 것을.
나는 얼른 당신을 집어 들고 가게 주인을 찾았지만 가게는 비어있었습니다.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옆 가게 주인에게 물어봤어요. 옆 가게 주인이 불평 섞인 소리로 "장사는 안 하고 자꾸 어디를 돌아다닌담." 하더니, "6천 원만 내세요." 하더군요. 나는 서둘러 지갑을 열었습니다.
당신에게 마음을 뺏긴 나는 당신 족보가 궁금해서 인터넷 바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연극무대에서 태어났더군요. 그 연극 주인공인 페도라 공주가 당신 조상을 머리에 얹고 나왔다고 해요. 공주가 썼던 모자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다 보니, 공주의 이름인 페도라가 당신 종족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젠더 구분 없이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고요. 햇빛을 가리려는 실용적인 목적 외에 품격과 멋을 더해 주는 존재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지요.
"내가 이렇게 살 줄 어떻게 알았겠어?" 혹은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이 인간에게만 해당이 되는 말이 아닌가 봅니다. 늘 사람의 머리 위에서 꼿꼿한 자세로 살던 당신이, 구제 옷 가게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신세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내가 구제 옷 가게에서 당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 당신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너무 점잖지 않고, 약간의 여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약간의 여지란 고난을 겪은 자만이 지닐 수 있는, 다른 존재를 이해하는 마음과 다른 존재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함이었습니다.
첫 주인의 머리 위에 얹혀 집을 나설 때 그리고 그에게서 버려질 때의 당신은 마음이 어땠나요? 당신의 얼굴에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넘실넘실 넘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저런 풍파를 겪었듯이, 나도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린 서로 통하는 데가 있을 겁니다. 비가 내리는 날, 아니면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해요. 이때는 격식은 내려두고 헐렁한 잠옷 바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때요?
물론 내가 외출할 때 당신을 두고 나가는 날도 있을 겁니다. 그때 구제 옷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은 낡아서 버려졌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그 낡음은 당신이 존재 이유를 정직하게 살아낸 시간의 무늬입니다. 낡음이라기보다 새것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묵은 시간과 당신 삶이 빚어낸 아름다움입니다.
페도라 당신에게도 세월은 비껴가지 않겠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낡고 헤어져서 단정하게 앉아 있지 못할 때가 오겠지요。 당신의 품위가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날이 온다 해도 염려하지 마세요. 그때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화초를 안고 있는 화분에게 당신을 입혀줄 거니까요. 당신은 태어난 이유 즉 사람의 머리에 내리쬐는 햇볕을 대신 받은 일을 넘어서는 일, 다른 생명을 보듬으며 살게 될 테니까요.
사람은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이유가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의미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되었다면 사람은 또 이걸 거부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설 겁니다. 사람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니까요.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살아갈 의미를 만들어야 사는 맛이 난답니다. 나를 살맛 나게 하는 존재 중 하나는 당신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건 괜찮아요. 하얀 머리카락은 당신의 낡음과 같은 시간의 무늬라서 그것만의 품위와 멋이 있으니까요. 머리카락이 빠져 머리밑이 허옇게 드러나 보일 때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가 꺼려져요. 정수리와 가르마가 허옇게 드러나는 것이 닳음이라서 그래요. 내가 말하는 닳음은 당신의 몸이 미어져 당신의 몸에 구멍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내가 당신을 머리 위에 턱 올려놓는 순간, 내 몸속 시간의 바늘이 10년 전으로 휙 돌아갑니다. 그래서 외출할 맛이 납니다. 살아갈 맛이 납니다. 사람은 살아갈 맛 난 게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오랫동안, 정말이지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답니다. “페도라씨, 당신은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나는 당신 아래에서 당신을, 살맛 나게 해주는 존재로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