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바람씨에게 보내는 편지
어느 날 당신이 손바닥을 구부려 내 수만 개의 이파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잎사귀 앞면과 뒷면을 어루만지던 바람 당신의 그 손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붕어빵틀은 붕어빵이 틀에 몸을 맞추기를 기다리지만요
당신은 내 잎모양에 맞춰 손바닥을 구부렸어요.
달걀 모양으로 생긴 납작한 잎몸에
가장자리의 뾰족하고도 자잘한 톱니들 사이, 그 좁은 틈새의 미세한 흔들림에
잎몸 가운데의 긴 주맥과 빗살무늬의 짧은 측맥들과 거미줄 모양
잎맥에 얽힌 웃음과 눈물에
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잎자루에 우주와 소통하기 위한
문, 기공에 맞춰, 당신은 당신을 말없이 구부렸어요.
붕어빵이 다가오길 기다리던 붕어빵틀과 달리
나의 길을 터주기 위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가늠하고 그것을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예측하고 내 상황에 맞춰, 나비처럼
나붓나붓 날기도 하고 솔개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가지가
부러지도록 온몸을 흔들기도 하던 당신, 바람씨에게
오늘은 내가 먼저 다가가려 편지를 쓰는데, 당신이 내 잎몸을
얄랑얄랑 간질입니다. 또 한 발 늦고 말았습니다.
잎몸: 잎사귀를 이루는 넓은 부분. 잎맥과 잎살로 이루어진다.
주맥: 잎의 한가운데 있는 가장 굵은 잎맥.
측맥: 주맥에서 좌우로 뻗어 나간 잎맥.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