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뫼르소 씨, 당신을 친구라 불러도 되겠소? 지금까지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소만, 자넬 친구라 부르겠네. 분명 자넨 이렇게 대답할 거니까. "당신이 친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 나야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어요."라고.
친구여, 난 자네 마음을 알 것도 같았네. 왜 엄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지를.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는지를. 마리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이고,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할 거라 했는지를.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결혼은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을 때 "아냐."라고 대답한 이유를. 다른 여자가 결혼하자고 해도 할 것이냐고 묻는 말에 "물론"이라고 대답한 이유를.
레몽 생테스는 포주인 데다 이웃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은 거친 사람인데도, 친구가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고 말하며 그와 친구가 된 까닭을. 레몽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어차피 한 번은 당하는 일이라고 위로하자 당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 이유를. 레몽이 사귀던 여자를 혼내려고 편지를 써달라고 할 때 편지를 써주고 여자를 때린 후 증인이 되어 달라고 했을 때도 나로서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일이라며 증인이 되어준 이유를
친구 뫼르소여, 자네가 슬쩍 내비친 말을 난 귀담아 들었다네. 회사 사장이 파리에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확장시키면서 당신에게 파리에 가서 근무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자네는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네. 사장이 삶의 변화에 관심이 없느냐 묻는 말에는 그 누구도 삶을 바꿀 수 없으며 이런 삶이나 저런 삶이나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하고. 지금 여기의 삶이 싫지 않다며 거절하고 나로서는 삶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고도 하고.
자네 뫼르소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꺼낸 "학업을 포기하고"라는 이 말, 화살처럼 날아와 내 귀에 꽂혔네.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는 자네 말은 팡파르처럼 내 속에 크게 울려 퍼졌다네. 엄마의 죽음도, 한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도,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누구와 친구가 되든, 이 모든 일들이 컵이 없으면 밥을 담아 먹던 그릇에 물을 부어 마시는 일 같은 거라는 것과 같은 거라 자네가 생각한다고 이해해도 되겠는가?
자네가 학업을 포기했듯 나도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네. 자네가 학생이었을 때는 야망이 많았듯, 나도 야망이 좀 있었다네. 난 인간의 기원을 알고 싶었다네. 그래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네. 난 아버지 병환으로 학업을 포기했는데, 자넨 무슨 연유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는가? 학업을 포기한 이유는 같지 않겠지만, 우리 둘 서로 같은 것은 꿈을 포기한 것이지. 그 꿈을 다시는 좇아 기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고.
친구여, 잠시 내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나. 자네처럼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난 깨닫지 못했다네. 꿈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꿈을 향해 한 발자국도 걸어가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지. 그래서 무리에 섞여 나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살아왔다네. 비참한 일이었지.
근데 친구 뫼르소여, 자네는 세상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미래에 뭔가를 이루기 위해 혹은 이루지 못할까, 애쓰고 걱정하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 세상에는 엄마 장례식장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사람들에겐 각자 소중한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쓰고 가진 걸 잃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잃으면 울고불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자넨,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형 선고를 받은 까닭이 이것이라니 어이없지 않은가. 자넨 너무 솔직하더구먼.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과 달리 그래도 안 그런 척, 안 그래도 그런 척하며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며 살아가는데 말이야.
아내가 죽었는데 북을 치고 노래하는 장자와 네가 다를 바가 뭐 있어? 장자가 깨달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말이야. 너도 깨달아서 그런 건데. 너랑 장자를 비교하자면 너보다 장자가 더 이상한데. 왜 장자는 되고 자네는 안 되는 건지 나는 답답하네그려. 변호사가 장자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내가 죽었는데 노래하고 북 치는 사람을 존경하는 마당에, 네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항변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자네 뫼르소에게 한 가지 물어보네. 가장 소중한 것, 야망을 이룰 수 없어 낙담한 자네, 세상에서 야망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없었던 거지? 바꾸어 말하면 자네에게 야망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고. 야망이 아닌 것은 이거나 저거나 모두 별것 아니라고. 자네는 무덤덤하게 살려했지만, 그렇게 살 수 없었네. 그래서 가징 소중하게 여겼던 야망을 떠올리지 못하게 강한 햇빛과 바람과 바닷물에 몸이 재빠르게 반응한 것은 아닐까? 마음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몸이 대신 짊어지게 하면서 직시해야 할 고통을 회피하고 혹은 방어한 것은 아닐까?
뫼르소 친구여, 난 몸의 감각은 사라지고 가슴의 감각이 살아나 맨날 가슴 속살이 예리한 칼날에 찔리며 베이며 살아왔네. 나는 자네를 이해할 것만 같은데, 내가 자네를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네가 사형이란 선고를 받고 상상한 것들을 떠올려 보게. 사면을 상상하고 왜 그리 기뻐했겠나? 왜 단두대가 고장 나는 상상을 했으며 열 명에 한 명은 죽지 않은 약을 상상했겠어? 젊은 그날 자네가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지만, 자네는 그때 한 가지 사실을 몰랐던 거야. 바로 자네에겐 야망보다 더 중요한 목숨이 남아있었다는 걸. 그래서 버텨왔다는 걸.
결국엔 20년 일찍 죽으나 20년 뒤에 죽으나 다를 바 없다고 깨달았지만, 사형 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자네가 목숨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미처 몰랐던 거, 흠이 아니라네. 젊음은 죽음을 상상하지 못하는 거 당연하니까. 자넨 말했네. 행복했고 행복하다고. 나도 그러하네. 언제 죽든 상관없네. 그런 게 생명이니까.
내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고 덜 중요한 것이 있었지만 나도 행복하고 행복했다네. 나는 자네가 사형수라도 친구라고 부르겠네. 한 점, 학업을 포기한 곳에서 만났다가 각자 자기 삶의 궤도를 돌아 돌아 다른 한 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니까. 바로 죽음 앞에서 말이야. 우린 같은 사형수지만, 뫼르소 친구여, 나와 달리 자네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형수로 남아있을 거라네. 이건 까뮈가 자네에게 준 선물이라네.
자네에겐 시간이 아주 많네. 자네가 거주하던 방안을 옷장의 상감무늬 모양과 색깔과 깊이까지 꼼꼼하게 추억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난 안타까워. 이것저것 경험해보지도 않고 생각만으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난 삶에서 아직 중요한 것이 있다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난 살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후회할 걸세.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보고 난 뒤에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다는 것을 아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이 점이 나와 자네가 서로 다른 점이라네. 난 중요한 그것을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쓴다네. 이러나 저라나 괜찮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네. 그냥 중요한 걸 하기 위해 애쓴 걸로 만족하니까.
자네가 사형이 집행되는 날 왜 사람들이 자네를 향해 증오의 함성을 질러주기를 바라는 건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상관없다는 자네가 말이네. 사람들이 증오의 함성을 지르든 말든 상관없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아니, 이 말조차 내뱉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자넨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깨달았다고 말했지만, 중요한 것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네. 이보게, 뫼르소여. 죽어가는 마당에도 사람들이 증오의 함성을 질러주기 바라는 자네의 마음을 난 이렇게 읽었네. "뫼르소 네게 중요한 것이 있었다고. 그것은 사람들과 함께 연결되는 삶이었다고. 자넨 그걸 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