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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관한 나의 생각, 자기 합리화일까?

맨발 걷기를 하다

by 할수 최정희

오랜만에 공원에 가서 맨발 걷기를 했다.

이 공원은 폭은 좁은데 큰 도로를 따라 길게 펼쳐져있다.


공원과 도로 사이에 있는 인도에 버스토큰 박스에서 복권을 팔고 있다.

이 복권가게는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로또 1등이 당첨이 된 곳이다.

당첨된 금액이 무려 58억 원이다.

이곳이 로또명당으로 소문이 난 후 복권을 사러 사람들이

몰려와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오늘 아침 맨발 걷기를 하러 가다가 이 복권방을 보았다.

맨발 걷기를 하는데 자꾸만 복권에 대한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나는 복권 정책을 펴는 정부도 사는 사람도 못마땅했다.

정부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을 만들어내 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여서였다.


그래서 나는 복권을 사지 않았고 복권을 산다는 생각만 해도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 내가 일 년에 몇 번 복권을 산다. 당당하게.

길 가다가 우연히 복권방을 발견했을 때, 로또 1000원 한 장 1000원짜리 즉석 4장을 산다.

사실 요즘엔 몇 번 더 사게 된다.


내가 매주 가는 도서관 입구 버스정류장에 복권방이 있어서다.

1등을 무려 25번, 2등은 100번 넘게 당첨된 곳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엔 사람들이 인도까지 줄지어 서 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내가 1등에 당첨되면 어떻게 쓸지 다 계획해 놓았다.

가능한 다 빨리 소비해서 내 손에 그 돈이 남아있지 않게 할 작정이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복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이건 말이 안 된다."


나는 복권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되었다.

내가 정부가 복권을 팔아서 번 돈을 받는 강사였던 것이다.

복권 정책이 못마땅하고, 복권 사는 것이 부끄럽다면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프리랜서 숲해설가로 활동하는 10여 년 동안

매년 산림청 녹색기금 숲체험 프로그램에서 숲체험을 진행하고 강사료를 받았다.


나는 내가 받는 강사료가 복권판매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복권 사는 것은 부끄럽게 여기면서 그 복권 판매금액을 강사료로 받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나는 내가 부조리한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날 이후 복권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했다.

모든 것에는 좋고 좋지 않은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우리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이 우리 삶을 이끌고 있다고.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이 복권 기금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산림청 녹색기금 숲체험 프로그램은 그중의 한 부분이다.


내가 복권을 사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마음이 조금 있기도 하고

나는 나와 같은 강사의 강사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산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내게도(?)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다.

내가 복권 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려고,

내가 복권기금으로 받은 강사료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일까?


이는 나의 화두 중하나다.


어느 날 이건 부끄러운 거야로 결말이 나면

지금 당당하게 사는 복권을 사지 않을 수도 있다.

복권 산 일을 부끄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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