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도구다
어제저녁에 식물에 관한 새 책을 기획하였다. 작년에 식물에 대한 책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을 출간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숲에서 활동해 왔는데, 이것 말고 또 쓸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식물에 관한 책을 쓰려고 자주 생각했다. 어제 오후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를 잡고 저녁에 내내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목차까지 기획할 수 있었다. 아래는 제목과 부제 그리고 프롤로그다.
1. 이 책은 숲을 돋보기로 읽어낸 생명의 기술사다.
2. 인간의 기술은 동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마련한 생존의 도구에서 비롯되었다.
3. 데이비드 크리스천이 빅 히스토리, 즉 생명을 거대한 흐름의 시간으로 번역했다면,
나는 그 시간 속을 살아낸 생명의 세세한 삶을 기술로 번역했다.
인간은 식물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저는 숲을 해설하는 사람입니다. 달리 말하면, 숲에 감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숲을 찾은 분들에게 제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것 좀 보세요. 정말 기가 막히지 않나요?”이니까요. 저는 그분들이 먼저 감탄한 후에야 혹은 “이 식물의 이름은 뭐예요?”라고 물을 때나 식물의 이름을 말해줍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작은 확대경을 들고 숲 바닥에 엎드려 바위에 붙은 이끼를 들여다보았어요. 그날따라 렌즈 너머로 확대된 바위의 표면과 푸릇푸릇한 이끼의 모습이 마치 크고 작은 분화구가 가득한, 이제 막 생명이 탄생하고 있는 어느 외계 행성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제 머릿속에서 두 가지 장면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뉴스에서 본, 먼 행성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이 원대한 계획을 하는 장면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4억 5천만 년 전, 물속에서 살던 식물이 처음으로 저 척박한 육지를 올려다보던 순간이었지요. 인간이 먼 행성을 바라보며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해 살아가길 꿈꾸듯, 당시 식물도 산소도 없고 자외선이 쏟아지며 물 한 방울 없는 불모지로 옮겨가서 사는 게 더 나을까 궁리했을 겁니다.
우리는 ‘기술’을 다르게 이해하고 정의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기술은 기계나 장치를 뜻하지 않습니다. 기술이란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정의하면, 기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앞서지요. 식물은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뿌리로 물과 광물을 끌어올리며, 균과의 공생으로 자원을 분배해 왔거든요. 식물에게 기술은 선택지가 아니라 존재 조건이었답니다. 식물은 도구를 ‘따로’ 만들지 않습니다. 도구가 몸이고 몸이 도구이니까요.
식물 이후 등장한 동물은 몸의 일부를 기능별로 분화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이빨은 절단과 분쇄의 역할로 특화시켰고, 발과 날개는 이동 수단이 되었지요, 그 외 감각기관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수집하고 또 다른 존재와 소통하는 수단이 됩니다. 동물의 기술은 몸을 이용한 것이어서, 몸의 한계가 곧 기술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기술은 이 계보의 맨 끝에 등장합니다. 인간은 동식물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인간은 몸 전체나 일부를 도구로 사용하는 동식물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그 기술의 한계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방법을 선택한 이유였겠지요.
그래서 인간은 이빨과 손이나 발을 도구로 직접 쓰기보다, 손을 대신하는 외장 도구 즉 돌도끼와 돌칼을 만들었을 겁니다. 짐승을 잡기 위해 달려가는 대신, 화살을 날려 보냈고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이후 인간은 감각을 확장하는 장치,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를 만들었고 그러면서 인간의 기술의 외장화는 점점 확대되었습니다. 도구를 외장화 한 인간의 기술은 몸의 제약에서 벗어났고 속도는 빨라져서 대부분의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규모는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기술의 원천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지요. 식물이 먼저 기술을 발명한 것이고요. 후발 주자 동물이 몸으로 다듬은 기술을 베껴 쓰는 인간은 기술의 가장 후발 주자입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고 조금 변경시켜 자국에 알맞은 도구를 만들 듯이, 인간은 자연에 존재하는 기술을 모방해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지요.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이 들여왔을지라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기존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하여 뽑아내고 잡아 죽입니다. 소탕작전에서 애꿎게 당한 뉴트리아, 블루길, 배스, 가시박, 단풍돼지풀들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다시 생각하면 우리 인간은 아메리카 대륙에 오랫동안 살고 있던 인디언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새 이주민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그들 동식물보다 늦게 도착해서, 이미 살고 있던 그들을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하곤 주인 행세하니까요. 그리고 그들보다 더 생태계 큰 교란을 일으키면서도 미안한 내색도 하지 않지요. 정말 염치를 모르는 태도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구의 질서를 흔드는 가장 위험한 차용자이며 생태 교란자로 되어가는 중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이 늦게 온 것이 확실히 유리했습니다. 수억 년 동안 다른 존재들이 도전하고 시험하며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인간은 그 시간을 충분히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효율을 선택했고, 부를 쫓아 그게 무엇이든 증식을 가속했으며, 지금도 차용한 기술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먼저 공장을 짓고 산업화하면서 탄소 배출을 많이 해놓고 이에 대한 대책을 하지 않듯 말입니다.
자연에 해를 끼치는 쓰레기를 남기는 인간의 외장화 기술은 지구와 그 생태계의 순환을 막아 지구의 순환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생명체의 존재의 지속성은 물론 지구의 영속성까지 불확실해졌습니다. 기후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으며 회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 젊은이들은 출산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겐 이에 따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좁아졌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 문제에 적극적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동식물이 인간더러 교란종이라며 소탕작전을 벌여도 인간은 입을 벙긋할 처지가 못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숲에서 활동하는 사람인지라 오랜 시간 생명체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몸의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사색을 해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기술의 정의를 달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간 중심의 기술을 설명하기보다, 기술이 어떻게 최초의 생명체 속에서부터 진화해 왔는지를 말합니다. 즉 이 책의 시선은 지구의 주인 혹은 거주자가 아닌, 방문객으로서 이미 작동 중인 세계를 바라봅니다.
인간이 잘, 그리고 편하게 살기 위해 발전시킨 기술이 지구와 생태계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누구나 인정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 역시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존재의 고통을 겪으며 지속성을 위협받고 있다는데도 동의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유독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그리 고려하지 않는 듯합니다. 책임을 아주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지금은 우리가 기술이 무엇인지 새로 정의하고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 기술을 다시 정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 지구와 생태계가 안정화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중히 여기는 덕목, 책임을 제대로 다룬 결과를 지금 살고 있는 우리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세대들이 볼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