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건너 로즈메리

집중에서 기다림으로

by 할수 최정희

커피를 건너 로즈메리

: 집중에서 기다림으로


서너 달 전쯤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던 중 문득 '오늘은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에 있던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를 타서 새벽 여섯 시쯤 한 잔 마셨죠. 효과는 좋았습니다. 그날 오전 내내 글이 술술 써졌으니까요.

문득, 언젠가 늦은 오후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어요. 오랜만에 나온 지인이 직접 내려왔다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밀었죠. 평소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정성이 듬뿍 들어서인지 꽤 맛이 좋아 홀짝 마셔버렸답니다.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눈이 말똥말똥해서 한숨도 못 잤어요.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죠.


그 강력했던 각성 효과가 생각나서 곧장 갈아 놓은 원두와 종이 필터를 샀어요. 본격적으로 새벽 커피를 마셔보기로 한 거죠.


외출하지 않는 날이면, 새벽마다 커다란 머그컵에 종이 필터를 씌우고 그 위에 커피 가루 두 숟가락을 올렸죠. 끓인 물을 천천히 부어 우린 뒤 따뜻한 물을 조금 더 보태는 방식이었어요. 맛은 없었지만, 집중은 잘됐기에 자주 마시게 되었답니다.


가끔은 필터 아래가 툭 내려앉으면서 커피 가루가 머그컵 속으로 쏟아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어요. 그 뒤로는 필터 끝부분을 접어 뒤집고, 그 안에 가루를 담아 조심스레 물을 부었지요. 하지만 내가 내린 커피는 여전히 맛이 없더군요.


결국 유튜브에서 맛있는 커피 내리는 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처음에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 원두를 불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천천히 부어야 맛이 좋다고 했어요. '이런 작은 차이가 맛을 만든다니!' 알려준 대로 해보니, 확실히 맛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원두를 직접 갈아 마시면 더 맛있지 않을까 싶어 그라인더를 검색해보기도 했답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집중은커녕 머리가 과부하된 것처럼 멍해지기 시작했어요.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새벽에 깨도 일어나지 않고 더 잤지만, 뇌는 여전히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깊은 사고는 불가능했고 그저 잠깐씩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어요.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마 위에서 정수리 사이가 묵직한 돌에 눌린 것 같은 감각이 남아있어요.


어젯밤, 문득 커피 한 잔 마시고 잠을 설쳤던 그날 일이 다시 떠올랐어요. 그제야 이게 커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커피 부작용 증상과 비슷했답니다. 남들은 수년간 매일 마셔도 끄떡없는 것 같은데, 고작 몇 달 마신 나에게 이런 반응이 오다니요. 내 몸이 야속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몸이 계속해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나는 오로지 ‘집중’에만 매달리고 있었네요.


지금부턴 커피 대신 허브티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로즈메리를 두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코를 가까이 대니 싱그러운 로즈메리 향이 몸속 깊이 스며드네요. 이 향은 억지로 머리를 흔들어 깨우는 자극이 아니라, 코로 스며들어 몸 전체를 편안함으로 물들입니다.


로즈메리를 한 줄기를 꺾어 씻은 뒤 머그컵에 넣습니다. 전기포트에서 끓인 물을 붓습니다. 로즈메리 향이 코끝에 오래도록 머뭅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뜨거운 물속에서 줄기는 더 짙고 선명한 초록빛으로 변해갑니다.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몸이 원하는 만큼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며칠 뒤 화원에 가서 애플민트와 라벤더도 사 올 생각이에요. 억지로 집중하는 대신, 허브 식물로 향기 테라피를 하며 기다리려고요. 커피 가루에 물을 붓고 잠시 기다려야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것처럼, 생각에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로즈메리 향이 우러날 때까지 컵 속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물 위에 떠 있던 자잘한 잎들이 물을 머금어 진녹색으로 변해가면서, 차츰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들떠있던 마음도 차츰 가라앉으며, 몸속으로 고요가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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