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작가 박혜진 May 17. 2024

번외 2. 체조 공주님, 엄마는 마음이 두 갈래야

엄마의 전학 이야기

걱정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




엄마는 상황에 맞추느라 전학을 한 경험이 많다. 

유치원부터 얘기하자면, 다섯 살 때 가봉에서 유치원을 잠시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 마디로 끔찍했다. 거구의 흑인 선생님, 못살게 구는 백인 남자아이, 못 알아들을 수 없는 말(프랑스어). 그럼에도 배운 노래들(귀국하고 나니 6개월 만에 잊어버렸지만 테이프에 녹음해 둔 게 있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유치원을 다녔지만 전혀 기억이 없다. 사진만이 증거였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돼서 2학년은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했다. 

울고 싶고 가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 가겠다고 한 기억은 없다. 

정말 무서운 딸기코 남자 선생님.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걸핏하면 아이들을 불러내서 야단쳤다. 

책상의 90%를 자기 자리라고 우기면서 선을 긋고 못 넘어오게 했던 남자 짝꿍. 놀이터에서 다시 만나게 돼서 심장이 요동쳤던 기억이 30년이 넘도록 따라다녔다. 한 학기만에 프랑스에 가게 돼서 그 끔찍한 학교에서 벗어나게 되니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잠시. 

2학년이었지만 1학년을 다시 다니면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젊은 여자 선생님은 말귀 못 알아듣는 동양 학생이 지시 사항을 잘 따르지 못할 때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곤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던 시기다.

3학년으로 월반해서 '있어야 할' 학년에 돌아온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새로 친구들을 사귀고 1년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고달팠다. 겉으로는 칭찬을 했지만, 여전히 동양 학생에 대한, 미묘하게 불친절한 시선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은근한 인종차별이랄까. 

그 후 이사를 가서 4학년은 다른 학교에서 다녔고, 5학년은 학교가 이사를 해서 새로이 적응해 가며 1년을 보내게 됐다. 

그 이후 한국에서 2년, 프랑스에서 3년 등 계속 두 나라를 오가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적응이 최대 과제였고,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상황에 맞추어 학교를 옮겨 다녔지만, 

특별한 목적을 위해 스스로 전학을 선택한 경우도 번 있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학교에서 진학하는 대신 국제학교를 선택한 것. 

안타깝게도 진로와 진학 측면에서 봤을 국제학교에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몰랐다. 알았더라면 그 비싼 학비를 내고 영어를 익히는 데에 열중하지 않고 진로를 위한 진학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 마인드가 없었던 게 아쉽고 후회가 되어 아이들 교육을 생각할 때 고민하는 지점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는 지역에 따라 배정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다. 

어쩌면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주어진 환경이니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문제가 생겨도 적어도 선택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의식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전학을 다니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들에 대한 책임을 부모님에게 돌리고 있었다. 

 (아시면 서운하시겠지만, 어떠한 상과 칭찬도 어려움에 대한 보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나의 선택으로 인해 아이들이 힘들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은 귀신 같이 안다. 부모가 무엇을 두려워하느지. 

부모의 기대와 희망을 먹으며 자라지만, 두려움 역시 아이들의 양식이 된다. 




아인이가 체조를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체조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기로 선택한 것은 

누구의 선택일까?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진학과 진로에 대한 가이드를 해 주고 싶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원 없이 지지하고 지원해주고 싶다.


험난한 길이 될 거라는 걱정은 아인이가 당장 겪을 전학, 적응, 친구 관계를 다 포함한다. 

또한 매일 4시간씩 운동을 한다는 방과 후 체조부의 운동량과 학업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왕복 2시간이라는 통학 시간도 있고, 

부모의 체력적, 경제적 역량도 시험 무대에 올라가게 된다. 


막연하게 가 보고 싶었던 길이 현실이 된다는 설렘을 품고 

그 길을 가 보겠다고 신이 나 있는 아인이를 보면 

덩달이 신이 나기도 한다. 


엄마의 기우

이 모든 걱정이 기우일까? 과연 그리도 험난할까? 

저렇게 하고 싶다는데 험난한 게 대수일까? 

 너무 앞서서 걱정하고 고민하는 게 아닐까?

이 세상에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걱정거리 중 7%밖에 없다고 하고 나머지 93%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는데

그 7%를 잘못짚고 있다면??? 


겪어봐서 힘들다는 것을 아는 전학. 아인이는 내가 아니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자기가 좋아서 하면 다 즐겁게 감수할 수 있을까? 

나처럼 언어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려움이 있으면 도움을 잘 청할 수 있을까?   


 아인이가 막내라 부모 나이가 50대 중반 전후로 

둘 다 갱년기 증상으로 어려움이 있고 많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겪고 있는데

앞으로 최소 10년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까? 

또 뭘 더 걱정해야 할까? 

진짜 걱정은 뭘까? 



아침이 되면 

아인이는 등교하게 된다. 

어쩌면 이 학교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

오후에 전학을 희망하는 학교 체조부로 테스트 보러 간다.

그 결과에 따라 인생의 한 획을 스스로 긋게 될 수도 있다.   

엄마는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지켜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14. 엄마, 나 핸드스프링 할 줄 알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