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작가 박혜진 May 17. 2024

15. 엄마, 나 왜 체조를 좋아하게 된 거야?

어린아이의 기억은 기록해 두세요

며칠 전 운동장에 철봉을 하러 갔다. 

아인이가 운동을 하는 동안 엄마도 함께 운동을 하면 참 좋으련만. 

상체, 특히 팔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철봉을 잡으면 손도 아프고 힘이 금방 빠지니 매달리기는커녕 붙잡기조차 안 한다.


실컷 연습을 하고 돌아오는데

뜻밖의 질문을 했다.


"엄마, 나 어떻게 체조를 좋아하게 됐어?

기억이 잘 안 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허점을 찔린 기분이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럴 수 있다. 

정확하게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4-5년 전 분명히 올림픽 경기들을 봤고

그중에 체조 경기도 있었다. 

여서정 선수를 비롯한 체조 선수들이 마루와 도마, 평균대, 철봉에서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카트휠을 하고 방방 뛰어 공중 돌기를 하고

철봉에서 뱅글뱅글 도는 남자 선수들을 보며 마음을 졸이고 있다가 착지하는 순간 안도하고 감탄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해에는 방과 후 수업이 없었다. 코로나 2년 차,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1, 2학년은 전면 등교를 하긴 했지만,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을 함께 하는 수업은 불가능했다. 2학년이 되어서야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약해진 덕(?)에 방과 후 수업을 재개했고, 리듬체조와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2022년 아시안 게임을 통해 다시 한번 다양한 운동 종목을 관람할 수 있었고, 

그때도 역시 체조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체조를 배울 수 있는 데가 있는지 묻고, 배우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인이가 7살일 때 친구 하나가 체조를 배운다며, 서초동에서 40분 떨어진 올림픽공원 근처 오금동으로 학원을 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 수업을 듣자고 거기까지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더구나 그 친구네는 동생 둘까지 온 식구가 다 가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고 놀고, 근처 맛집에서 밥도 먹고 온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인이한테는 고3 언니가 있었고, 중3 오빠도 있어서 입시가 한창이었다. 

엄마는 언니 오빠 챙기기도 벅찬데, 아빠하고 다녀오라고도 못했다. 




1년을 넘게 졸랐다. 

혼자 이런저런 운동을 흉내 내서 연습을 했고, 

엄마가 물구나무서는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체조 배우고 싶다고, 어디서 배울 데 없냐고 물었다. 

끈질기게, 집요하게,

은근하게.

엄마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체조라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엄마가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종목이었다. 

게다가 엄마는 검색에 약하다. 

그럼에도 3학년 올라가기 전 겨울 방학, 

집에서 멀지 않은 사당동에 한 학원을 찾아냈다.

사실 찾아낸 것도 아니다. 

영어 학원 원장님을 통해서 알게 된 정보였다. 




몇 주 뜸을 들이다 연락을 해 보니

체험 수업이 있단다. 

체험 수업을 예약하고 가 보니, 여느 운동 학원과 달리 지하가 아닌 3층에 있었다. 

처음으로 체조를 가르치는 학원에 가서 보니 여느 운동 시설과 달리 무척 넓어서 좋았다.

넓은 체육관에 트램펄린과 철봉, 평균대가 이쪽저쪽에 있고 아이들이 달릴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그런데 뭔가 꺼림칙했다. 

몸 푸는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섞여서 배우는데

운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운동기구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이도 재미있다고 하고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인이 친구 엄마에게 물었다. 

"ㅇㅇ이 아직도 체조 다녀요?"

  다니는데 토요일에 간다고 했다. 

그리하여 2월의 마지막 날, 오금동 체조 학원에서 체험 수업을 하고

한 달 뒤, 

4월부터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WHAT MATTERS


체조를 배운 지 1년 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체조 학원에서 체조부로 옮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아인이는 눈을 반짝이며 고대하고 있다.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니 마냥 설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번외 2. 체조 공주님, 엄마는 마음이 두 갈래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