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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작가 박혜진 Jul 05. 2024

22. 2024년 5월 23일, 그 이후

예술체조 선수, 아인이의 일상

드디어 금요일. 아빠는 어제저녁, 피로의 무게가 느껴진다고 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1.

이번주는 매일 7시 40분에 나가서 아인이를 8시 15분쯤 학교에 내려 주고 출근을 했다. 다음 주까지 2주 동안 아침 독서 프로그램을 도서관에서 하는데, 하루라도 참여하면 선물도 준다고 했다. 피곤하니 하루만 할 줄 알았는데 이번 주는 매일 참여했다.

이전 학교에서였다면 어렵지 않은 활동이었을 것이다. 8시 20분부터 시작하니 집에서 10분 전에만 나가면 되었을 것이다. 20분 동안 하는 주제와 관련 있는 책을 찾아 읽고 기록을 하는 것인데, 이리도 큰 부담이 되는 활동일 줄이야!


평소보다 20분 앞당겨 출근 준비를 마쳐야 하니, 5분 당겨도 바쁜 아침 시간이 아빠까지 더 바빠졌다. 일찍 나간다고 교통 상황이 더 수월한 것이 아니니 아빠는 딸내미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맞춰 주기 위해 운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두 배로 늘어난 운전 시간이 부담이 됐는지 3주 전쯤 허리를 삐끗해서 절뚝이며 다닌다. Pauvre Papa!



2.

1일부터 달라진 것은 훈련 마치는 시간이다. 이제부터는 정상적으로 7시까지 네 시간을 채우기로 했다.

"드디어!"가 아니었다.

아인이의 반응이 재미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내일부터 7시까지 훈련할까?"하고 물었더니 주저하며 1일부터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자기는 언제까지 적응기간이냐며 투덜거렸는데 당장 다음날부터 하려니 생각이 많아졌나 보다.


전학을 간 이후 3시부터 6시까지 훈련을 했다. 원래 훈련 시간은 네 시간인데 적응기간이 필요하니 한 달 정도는 3시간만 하면서 기초 체력을 단련하라고 했다. 그런 거 보면 지도자 선생님이 학생 선수의 체력과 건강을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시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과거 들었던 사례들이나, 주변 경험담을 통해 내가 상상했던 운동부 분위기는 사뭇 냉랭하고 냉정했다. 체벌이나 거친 언어, 선배와 후배 간의 갈등, 성적과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고된 훈련 분위기를 상상해서였는지, 나긋나긋한 선생님의 설명이나, 학생의 적응을 염려하는 배려가 생소했다.



3.

이전 학교를 다닐 때 8시 20분이 되면 칼같이 나갔다. 1분이라도 늦으면 늦었다며 뛰어가서 동네 지인들이 나중에 인사처럼 "아인이가 부지런히 뛰어가더라"며 아는 체했다. 이제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들이 볼 수 없게 되었다.


전학 첫 일주일 시간표
6시 알람 _ 기상 (이제는 7시)
7시까지 아침 식사_ 계란 요리(프라이, 스크램블, 오믈렛, 계란말이 중 하나),
                           과일, 빵이나 떡, 단백질 셰이크 한 잔.  (지금은 좀 다르다. 맞춰 가는 중)
*7시 50분_ 아빠 차로 등교
8시 30분 (~40분) 도착
           = 학교 수업 =
3시~6시 _ 훈련
6시 _ 아빠 차로 귀가, 차 안에서 식사
*6시 50분 (~7시)_ 집에 도착
휴식, 씻고, 숙제하고 10시쯤 취침

차 안에서 아빠가 준비해 온 저녁거리를 먹으면서 오니, 집에서는 과일이나 후식을 먹는 정도다. 첫날은 치즈김밥, 다음 날은 초밥, 햄버거, 도시락,... 매일 아빠는 뭘 사갈까 고민이다. 주변 맛집과 회사 근처 백화점 푸드코트를 돌며 맛도 좋고 영양가도 있는 음식을 챙겨 갈 생각에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본다.

이번 주부터는 도시락 통을 챙겨 가서 밥, 국, 반찬으로 바꿔 봤다. 간이 센 외식을 매일 저녁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

일주일이 지나고부터 등교하는 동안 차 안에서 잔다.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하고 싶다.

집에 오면, 아인이는 씻고, 숙제하고 자기 바쁘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아빠는 두 배로 늘어난 출퇴근 시간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4.

한 달 만에 달라진 체격, 체력

지난 5월 감기 때문에 소아과에 갔다가 쟀더니, 138.5cm에 28.5kg라고 했다. 140cm가 넘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체조부 선생님은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였다. 키가 크면 아무래도 불리해서일까? 물어보지는 않고 짐작만 했다.

이전보다 잘 먹는다. 밥도 한 공기 뚝딱 먹고, 이제는 웬만한 1인분은 거의 다 먹는다. 그래도 한 달 사이 체중은 500그램 정도만 늘었다.

그런데 허벅지는 더 단단하게 커졌고, 복근은 더 뚜렷해졌다. 일명 식스팩! 아인이는 자랑스러워하며 보여주고 엄마의 몰랑몰랑한 피부를 조물 거리며 비교한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팔과 몸통이다. 팔의 실루엣이 더 이상 야리야리하지 않다.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의 선이 뚜렷해졌고,  어깨 주변 근육도 두드러졌다. 몸통은 두꺼워졌다. 전체적인 균형을 봤을 때 이상하지는 않지만 빼빼 말라서 갈비뼈가 보이던 한 달 전과는 달리, 갈비뼈 사이사이에 근육이 차서 부피가 달라졌다.


5. 상처와 흉터

네 종목 중에 이단 평행봉이 문제다, 엄마가 보기엔. 예전에도 학원에서 철봉 잡고 연습하고 나면 손가락 아래쪽에 물집이 잡혀서 아프다고 했고 손바닥 한가운데도 굳은살이 생겼다. 손을 잡으면 보들보들할 열 살 아이의 손바닥이 거칠거칠 내 손바닥 피부를 찌를 때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었다.  

학원 선생님들도 다 체조 선수 출신이라 웃으면서 '친절하게' 알려 주셨더랬다. 선수 시절 딱지가 안고 피가 나는 기간을 거치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그게 아인이의 현실이 되었다.  

딱지가 잔뜩 앉아서 우툴두툴하다.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앞벅지를 확 긁어서 왔다. 손바닥만큼 넓게 점점이 피가 맺혀 있었는데, 따갑다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종아리가 더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했다. 정강이 뼈 있는 데도 철봉에 비비면서 연습을 하니 멍이 뼈를 따라 누렇게 들어 있었다. 영광의 상처인가? 아인이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엄마 마음만 아린 것 같다.   

 

6. 누적되는 기록, 꾸준한 누적

두 달 만에 아인이는 첫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가 어떤 것인지 경험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성적이나 실력이 안 된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회에 나가게 되니 아인이는 기뻐했다. 남은 한 달 동안 선생님의 보조를 받지 않고 혼자 몇 가지 기술을 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이다.


앞돌기, 뒷돌기 할 때 발 모양, 손동작 하나하나에 섬세한 절제미가 생겼다. 매일, 정성을 들이고 꾸준히 쌓으며 다듬어 가는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발목이 흔들려서 테이핑하여 고정시켰다. 


당분간 반복될 일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은 가운데 감사할 일과 보람, 의미를 찾아 기록하다 보면 어려움이 힘듦과 괴로움만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정말 힘들다 느끼며 포기하고 싶어지는 미래의 어느 날, 오늘의 기록이 힘이 되어 주리라 믿어 본다.

나와 그대와 세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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