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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Oct 16. 2024

아내가 애지중지한 시계를 버릴 뻔했다

회사 재직 시 내가 모셨던 상사분은 순발력과 판단력이 남달랐다. 당신의 무용담을 듣고 있노라면 두세 시간은 지루한 줄 모르고 훌쩍 지나간다. 미국지사 근무 시 Chicago 출장을 마치고 L.A.로 돌아오는 길에 Chicago O'Hare 공항에서 눈폭풍을 만났던 모양이다. 공항은 수십, 수백 편의 항공기가 지연 또는 취소되어 터미널 안은 승객들로 아수라장 이었다. 모두들 탑승을 포기하고 날밤을 세우기로 작정하고 의자에 쪼그리고 있는가 하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와중에 내 상사는 카운터를 찾아가 “나는 full price를 낼 터이니 비행기가 뜨면 먼저 태워 주십시오" 했더니 보딩패스를 주면서 기다리란다. 미국에서는 full price의 1/2 내지 1/3 가격으로 여행들을 다닌다. 내 상사는 오제이 심슨 O.J.Simpson 케이스에서 보았드시 살인도 무죄를 만들 수 있는 돈의 위력을 간파하고 full price를 제의하여 용케 많은 승객들을 제치고 L.A.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주재원 세 가족이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내 상사는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Nevada주를 달리고 있는데 맨 앞에서 달리던 차량이 과속으로 도로경찰에 잡혔던 모양이다.  뒷따르던 동료가 혹여 차량에 문제가 있어 정차하지는 않았는지, 동승자 중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궁금하여 그이도 차를 세웠다가 그만 두 가족 모두 속도위반으로 티켓을 받았다. 그러나 상사는 이 정도의 속도로 달리면 티켓감이라는 것을 눈치채고서는 창문을 내리고 경찰에 붇잡힌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나중에 봅시다"하고 지나쳐 티켓을 면했다는 재치도 돋보였다.


아는 것도 많으시고, 술도 잘 마시고, 매너도 좋으시고, 순발력과 재치가 남다르시니 같은 남자로서 저런 재주를 반만 갖고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대화 중에 '내일이 우리 집사람 생일이야" 하신다. 이를 듣고 있던 동료가

 

사모님 생일 선물은 준비하셨어요? 이번에 상무로 승진하셨으니 사모님께 좋은 선물을 하셔야지요.

우리 와이프는 보석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상무님이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보석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아니야, 우리 와이프는 달라

그래요? 반지 같은 것을 선물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니

예쁜 반지를 사서 드려 보세요. 틀림없이 좋아하실 겁니다.

글쎄, 그럴까?(반신 반의 하신다)


그래도 내 상사는 반지같은 보석을 사주고 싶어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닐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그랬다 치자.  여자들이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목에 진주 목걸이를 두르는 것을 보고 "여자들은 왜 저런 걸 좋아할까?"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결혼할 때는 둘이서 보석상을 찾아가 반지와 목걸이를 사지 않았냐고요? 기억도 없고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반지는 와이프가 사서 끼워주었고(비록 한 달도 못 끼고 벗어 버렸지만) 그녀의 반지와 목걸이는 돈으로 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했던 것 같다. 이를 확인키 위해 나중에 와이프에게 물었더니 참으로 이상한 집안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됐지만 단 한 번도 와이프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가 축하해 준 적이 없이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장가는 똑 부러지게 잘 갔다는 생각이다. 아직까지 쫏겨나지 않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이유는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와이프 생일이 곧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서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다짐하지만 정작 생일날 에는 여지없이 까맣게 잊어먹곤 했다. 하기야 본인 생일도 기억해 본 적이 없으니 세상에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또 있으랴.    


결혼 30주년이 됐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만회라도 해보고 싶어 모처럼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내 딴에는 거금(큰돈)을 들여 Las Vegas Bellagio 호텔에 "Celine Dion 특별 쇼"를 예약했다. 10월 29일 자동차로 L.A. 에서 Las Vegas를 향해 달리면서 차 안에서 목에 힘주어 말했다.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너무 무심했지요? 결혼 30주년을 위해 내가 특별히 Celine Dion 쇼를 준비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 언제인데요?

내일 이잖아요 10월 30일


고맙다는 인사를, 칭찬을 기대했는데 그녀는 Oh my God을 연발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당신 하는 일이 그렇지. 우리 결혼 기념일은 11월 30일이야. 안 하던 짓을 하면 이런 엉뚱한 일을 벌이는 거에요. 그냥 살던 대로 사세요. 생일, 결혼 기념일? 그따위것 잊고 산지 오래됐습니다."  

나는 당황했다.


명품에 대해서도 맹꽁이다. Gucci구찌, Chanel샤넬, Louis Vuitton루이뷔통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 이들이 어떻게 차별화 돼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역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둘이서 이태리 여행 중에 와이프 손에 끌려 샤핑몰을 찾았다. 이곳저곳을 끼웃거리다 어느 샵은 안내원이 문 밖에서 들고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저 샵은 왜 사람들을 못 들어가게 하지요?   

Chanel샤넬 매장 이잖아요

Chanel샤넬이 어때서?

매장에 손님을 한정시키기 때문 이랍니다.

미쳤군 그게 뭐라고

미친게 아니고 Chanel샤넬은 기다려서러도 들어가 볼려고 하지요.

Chanel샤넬은 모르겠고 이번 여행 중에 당신 시계를 사주고 싶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 골라봐요

하필이면 왜 시계여요?

지금 차고 다니는 시계가 볼품이 없어 보이니까요. 내가 보기에는 별로인 것 같은데 당신은 그 따위 것을 애지중지 하는것 같아요

괜찮아요. 시간만 잘 맞으면 됐지요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시계를 볼 때마다 그녀의 시계에 대한 사랑이 궁금했다. 그리고 나를 미안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별 볼 일 없는 남편 만나 변변한 시계 하나를 선물 받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 같으면 투정도 부려 보련만 괜찮다고 하니 고마운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딱해 보였다.


어느 날 시내를 돌아다니다 Apple Watch 애플워치샵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끌고 샵 안으로 들어갔다. 애플워치의 다목적 기능에 나도, 그녀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매장에서 가장 패션너블 fashionable 한 제품으로 구매했다.  내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내친김에 커피도 한잔 사겠다고 샵을 나와 인근에 있는 커피숍을 들렀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실은 내가 당신 모르게 그 시계를 버리려고 했었지

어머나! 왜 버려? 이게 명품은 아니지만 이래 봬도 품질보증서까지 있는 괜찮은 시계랍니다. 제 친구들 중에는 이 시계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뭐라고요? 어디 다시 봅시다


시계 브랜드 네임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서치 search를 해보았다. 가격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놀랐다. 애플워치 보다 몇 배 비싼 시계다.  물론 비싸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이유 없이 비싸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시계를 선물하고 싶다고 할 때 괜찮다고만 했지 쓸만한 시계라고 왜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당신이 언제 브랜드 네임에 관심이나 있었냐고 한다. 애플워치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소중한 시계를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고 나는 그녀의 시계 사랑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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