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by 문 내열

백화점에서 산 옷이 비록 비싸기는 했지만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서면 옷맵씨가 제법이다. 그래 돈 값을 하는구나. 식당에서 맛깔난 음식을 먹고 입이 호강하는 날에는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 집 앞에 있는 다이소에서 접착형 벽걸이를 사다가 벽에다 붙이고 모자를 10여 개 걸어 놨는데 간밤에 모두 다 떨어져 버렸다. "허당 이구먼. 꽝쳤어. 돈만 날렸네". 상점에서 구매한 물건도, 입에 넣은 음식도 제 값어치를 했는지 따져본다. 반세기 이상 살아온 이 사람도 갖은 정성과 열정을 쏟아부어 왔으니 손해난 장사는 아니었는지 따져보고 싶다.


산등성이에 걸쳐있는 무지개를 잡아 보겠다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던 사람이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았지만 쫓아가보면 무지개는 다시금 저 먼 곳에 서 있었다. 무지개를 손에 넣겠다고 뛰어다녔던 것을 우리는 욕망이라고 해야겠지?


회사 다닐 적에는 매니저가 되어 보겠다고, 중역이 되겠다고 갖은 애를 썼다. 개인사업을 할 때에는 사업체를 4-5개로 늘려 보겠다고 밤낯없이 뛰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나를 주저앉히기도 했지만 열정과 용기가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 뛰게 만들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머리도 희끗희끗 해지고 새 식구들이 들어오고, 새 생명들도 태어났다. 이들만 쳐다보고 있어도 세상을 다 갖은 듯 행복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


분명한 것은 살면서 최선을 다했고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도전도 주저하지 않았던 것만큼은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또한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했던 것도 A+를 주고 싶다.


경제 적으로 여유 없이 시작하다 보니 한때는 새끼들이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우유마저도 제대로 사주지 못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기죽어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에게 비굴하지는 않았다.


돈이라는 게 맘먹은 대로 안된다. 돈을 쫓아다녀도 노력한 만큼 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족들에게 변명했다. "나는 돈 버는 재주는 없는 사람이요. 그러나 열심히 사는 방법은 알고 있다"고. 이제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정도는 됐다. 열심인만큼 그 대가도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사니까 살아지데요. 살아있는 목에 거미줄 치는 일은 없을 터이니 좌절하지도 말고, 비관하지도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 보라고.



사람들은 자식 농사도 인생 성패의 하나로 평가한다. "아들들이 무슨 일을 하지요?" 물을 때 의사나 변호사라고 답하면 "대단하시네요. 자식농사 성공하셨네요"라고 한다. 글쎄다. 그것이 성공의 기준이라면 나는 실패한 건가? 자식들이 그들의 직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상관없다는 얘기인지? 의사나 변호사들은 자기 적성과는 무관하게 모두 다 행복 한지도 묻고 싶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 까지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행복이 무엇인가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대학진학을 앞둔 큰 아들이 내게 와서 대학에 가서 무엇을 공부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빠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미국이라는 사회도 잘 모르니 친구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하고 많은 대화를 해보고서 결정하라고 권했다. 고3이면 더 이상 미성년자도 아니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는 나이다. 이런 자식들에게 그들의 적성이나 능력은 생각지 않고 부모 자신을 포장하고자 의사나 변호사를 권한다면 부모는 자식들에게 그들의 장래를 결정하는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옆으로 비켜서줘야 한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 지칠 줄 모르고,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은 이미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들의 부모는 가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권위와 권력에 기죽어 살았던 새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것들은 당신들이 극복해야 할 것들이 못됩니다. 이제는 당신만의 행복을 생각하고 진로를 결정하십시오.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사는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도 행복을 저울질하는 중요한 가늠자다. 슬플 때 등을 토닥여 주는 가족이 있고 좌절하고 움츠리고 있을 때 지혜를 던져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세상을 잘 살았다는 징표다.


직장에서 사귄 친구들은 유리알처럼 쉽게 깨지는 것을 보았다. 경쟁과 상하관계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만났던 사람들 인지라 조직을 벗어나면서 이해관계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은 몇십 년이 됐지만 지금도 변치 않고 있다. 살다 보면 성당 친구들도 갈라치기를 할 수 있는 위기가 있었지만 믿음의 울타리 안에서 만나다 보니 나를 성찰케 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친구는 4박 5일 동안 태평양 연안으로 바다낚시를 가서 싱싱한 생선을 잡아오면 같이 먹자고 나를 부른다. 다른 친구는 내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주말 미사에 나타나지 않으면 곧바로 전화하여 별일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좋은 음식을 놓고 맨 먼저 나를 생각하는 친구, 안 보이면 무슨 일은 없나 하고 궁금해하는 친구가 내 곁에 있어 나는 늘 행복하다.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이야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쳐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 나를 아껴주고 기다려준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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