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은영이는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4학년 재학 중이었다. 군 복무도 마쳤고 대학 학사과정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 어엿한 직장을 구하는 게 무엇 보다도 중요했다. 그러나 대학 캠퍼스에서는 연일 반정부 데모로 어수선했다. 일부 같은 과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데모대에 가담하여 "독제타도"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와서 다음 수업시간에 맞춰 들어오곤 했다. 수업시간에는 반정부 운동애 대한 전단지가 책상 밑으로 학생들 무릎과 무릎 사이로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고개는 강의를 하고 계신 교수님을 향하고 있지만 눈은 무릎 위에 놓여있는 전단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군목부를 마치지 않은 학우들을 우리는 현역이라 불렀고 군 복무를 마친 나 같은 사람은 복학생이라 불렸다. 현역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영을 하면(군대를 가면) 취업은 3년 후에 걱정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농사지어 대학까지 보내주셨는데 졸업 후에 직장을 찾지 못하고 비실대면 어쩌나 하는 중압감에 취직이 "독재타도" 보다도 우선 이었다.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는데 도서관 정문 앞에 커다라 대자보가 붙어있다.
"내일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광주 사직공원으로 집결해 주세요"
뭐? 내일 비상계엄이 선포될지도 모른다고? 드디어 사달이 나고 마는구나.
그렇다면 이놈의 나라는 어떻게 되는 거야?
그리고 나는 이 시국에 무엇을 할 수 있지?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리가 매우 혼란스러웠다.
시국이 안정됐다 할지라도 나 같은 지방대 출신들은 서울로 올라가 직장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이리도 나라가 시끄러우니 말이다.
잠을 설쳤다.
늦잠을 잤다.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나를 깨웠다
택중 학생, 밖에는 지금 난리야. 계엄군이 시내에 진입하여 전쟁터나 다름이 없어. 당시는 광주사태였고 지금은 광주 민주화 운동 이었다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집 밖을 들락 거리면서 수시로 밖의 소식을 전해준다.
@ 계엄군이 임신한 아주머니를 총칼로 찔러 죽였대.
@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다닌대.
@ 계엄군이 가정집을 뒤지면서 대학생들을 잡아가고 있대.
@ 계엄군이 트럭에다 데모하는 시민군 10여 명을 태우고 교도소 쪽으로 가더란다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집 뒷문을 열어젖히더니
혹여 계엄군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면 택중 학생은 이 뒷문으로 도망쳐야 해?
그때 하숙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주머니께서 "택중 학생 전화 왔어 “
여자친구 은영이 목소리다
자기야, 옷을 정장으로 갈아입고 기다리고 있어
왜?
사태가 심각해 시내를 빠져나가야겠어
무슨 소리야?
공수부대 요원들이 지금 우리 학교 운동장에 캠프를 치고 있거든. 모두들 술에 취해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부수고 손에는 피투성이야. 우리 동료들에게 총부리를 휘두르는데 무서워. 우리 과장님이
"여보세요, 군인 아저씨들 나는 살만큼 살았으니 어찌 돼도 상관없소. 허나 이 젊은 아가씨들은 살려 주세요" 하며 막아서고 있으니 아무래도 잡히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아
1시간여 지났을까?
여자친구 은영이는 정장차림을 하고 그녀의 막내 여동생 7살짜리를 차에 태우고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막내처재를 가운데 태웠다. 우리 셋이서는 그 영업용 택시를 타고 담양으로 향했다. 빠져나가는 길 곳곳에는 시위대와 일전을 했는지 커다란 돌멩이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세 차례나 검문을 받았다.
군인들은 총부리를 차 안으로 들이대면서
너희들은 뭐야?
(여자 친구 은영이가) 예, 시댁 찾아가는 중입니다
가봐
정장차림을 한 부부와 가운데에 움츠리고서 눈만 말똥말똥하고 앉아있는 조그마한 꼬맹이가 그들의 눈에는 영락없는 한 가족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와 담양에 도착했다. 은영이는 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나는 담양에서 은영이가 광주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를 확인하려 했으나 전화는 이미 불통이 돼버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막내를 데리고 나간 큰딸이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이따금씩 먼 곳에서 총소리만 들리니 가슴을 붙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인근 화순 경찰서에서 근무하신 남편은 집으로 귀가하겠다고 전화를 한지가 한참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다. 남편, 큰딸, 막내딸이 이 난장판에서 돌아오지 않고 날이 어두워지니 어머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문설주에 기대어 가족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두 딸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짜고짜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정신 나간 년들아 어데 갔다 이제오냐. 말을 해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도 늦었단 말이냐. 내가 너희들 때문에 명대로 못살고 죽겠다."
겁에 질린 여자 친구 은영이는 남자 친구를 시외로 데려다주고 왔다고 엉겁결에 실토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이년아 사랑이 목숨보다 중하냐? 이 난리에 남자친구를 어디에 데려다주고 왔다고? 저년이 미쳐도 한참 미쳤네. 나는 니년이 사랑에 그렇게도 대단한 줄 몰랐다. 이러다 느그 엄니 목숨줄 넘어가겠다."
남편은 하룻밤을 넘겨도 귀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필시 무슨 변고가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날 정신 나간 여자처럼 시내 한복판에 시체를 쌓아둔 상무대를 찾아가 수십구의 시체를 뒤집으며 남편을 찾아 헤맸다. 어머니가 어데를 가신지 알 도리가 없는 칠 남매는 얼굴색이 잿빛되어 돌아온 엄마를 보고 “그러는 엄마는 어디를 돌아다니냐”고 소리를 쳤다.
상무대에 갔더니 느그 아버지는 없더라.
그러나 남편은 그다음 날 무사히 귀가하였다
그녀는 밤마다 방탄용으로 그리고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문에다 커다란 이불을 휘두르며 며칠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일 년 후에 여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하고 은영이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려 아니 우리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부모님을 찿아뵀다. 그녀의 어머니께서 나를 반기며
어서 오세요. 우리 은영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만나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지난번 난리 때 보니 우리 딸 은영이가 택중씨룰 많이 좋아했더라고요. 제 딸이지만 은영이에게 그런 불타는 정열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사랑이 좋기는 좋은가 봐요. 총부리도 두려워하지 않고 택중 씨를 담양까지 데리고 가다니요. 누구의 DNA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아니에요.
어머님 심려를 끼쳐드려 재송했습니다. 우리 결혼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목숨을 바쳐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그래요. 그 열정으로 무슨 일을 못해내겠어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이제는 50대가 돼버린 딸(막내처재)이 내게 말한다
형부, 그때는 제가 어려서 잘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큰언니의 형부에 대한 사랑은 한마디로 "목숨을 건 대단한 사랑이었어요. 우리 언니에게 잘하고 계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