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할 거야 그러나 애는 낳고 싶지 않아

by 문 내열

나는 아들만 둘이다. 이제는 다 성장하여 결혼도 하였고 자식들을 각각 둘씩이나 낳아서 기르고 있다. 가끔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 손주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내 팽개치고 "하비(할아버지)" 하고 소리 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긴다. "그래 이 새끼들이 내 핏줄이구나" 사랑과 훈훈한 온정이 우리 둘 사이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신기하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우리는 전에 만났었던 것처럼 반가웠고 친숙했다. 이게 하늘이 만들어준 인연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일게다.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왔다. 기다림이 아니라 불현듯이다.


몇 개월 전 이었다. 우리는 아들 내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헌팅톤비치(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주차장에 먼저 도착하여 그들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내 차가 들어오더니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한 사람씩 차에서 내린다. 손자가 나를 본 순간 “걸음아 나를 살려다오” 하고 뛰어 오더니 나를 꼭 껴안으며


“하비, 그동안 보고 싶었어 (habi, I missed you)

이제는 우리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함께 살아요(we live together forever ever ever)”


정말이지 가슴이 울컥했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았던 것도 아닌데, 걸음마를 마치고 뛰어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우리는 안 보면 보고 싶고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고 싶다니------


아, 이게 행복이구나. 아들아!, 고마워 세상 살면서 이렇게 행복해본 적이 얼마만이냐? “ 했다.


손주들이 놀다가 말썽을 피울 때면 아들이 벌떡 일어나 "아이고" 한숨을 내쉬며 뛰어가 일을 수습한다. 그리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표정이 "애를 기르는게 왜 이리도 힘들지요?" 하는 게 역력하다. 나도 애를 기르면서 저렇게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내 새끼들이 피피를(소변) 하가나 푸푸를(대변) 하면 더럽다거나 냄새가 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같다. 냄새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싼 똥을 연구소에 연구원이 현미경을 들여다 보듯이 건강한 배설물인지를 세심하게 점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새끼가 아니면 조금은 다르다. 내가 일곱 살 때 셋째 동생이 태어나 푸푸를 하면 "엄마, 또 똥 쌌어"하고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면 어머니께서 달려와 기저귀를 갈아 치우곤 하셨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이고 냄새야. 더러워"하면 어머니는 "무슨 소리야, 냄새는커녕 단내만 나는구먼" 하셨다. 이처럼 지 새끼들은 무엇하나 사랑스럽고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애를 기르면서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면서 결혼 전에 그가 식당에서 우리에게 했던 말이 소환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때다. 어느 날 와이프와 나를 데리고 베버리힐에 있는 고급 스테이크 하우스를 찾았다. 예전 같으면 동네 밥집에서 식사를 하련만 고급 레스토랑 이라니 속으로 "웬일이야" 했다. 와인도 한 병에 오백불(65만 원) 짜리 고급이다.


와인 서너 잔에 은근히 취했다. 식사도중에 아들이 느닷없이

"나는 결혼은 할 거야 그러나 애는 낳고 싶지 않아" 한다


술이 번쩍 깬다

"왜? 애를 갖지 않는다는 거지?

그냥, 둘이서 조용히,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그게 바로 삐꾸야(정상이 아니냐)"

내 목소라가 커졌다

아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일단 부모님께 통보는 한 거야" 말고는 달리 해석이 안된다.


내게 손주가 없다?

기분이 이상 야릇하고, 허전하고, 허망했다.

마치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런 일이 내게 있을 거라고 미쳐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 자식 낳아 기른다는 게 아들에게는 힘들게 보였었나?

※ 가정이 행복한 보금자리라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지 못했나?

※ 한때는 경제적으로 여의치 못했는데 그게 그에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영향을 미쳤나?

※ 아니면 세태가 바뀌어가고 있나?

※ 이기적이고 자기만을 생각한다는 MZ 세대들의 결혼생활이 이런 것인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됐다. 나는 애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우리 아들과 결혼을 하겠다는 그 여자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결혼식은 미국이 아닌 크로아티아에서 성대하게 치렀다. 식장은 일반 예식장이 아닌 성당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우리 일행은 3대의 요트에 나뉘어 일주일간 해안선을 따라 크루즈를 했다. T.V. 에 나오는 여느 유명한 탤런트 결혼식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그런 호화로운 피로연이었다. 요트 안에서 요리사가 차려주는 세 끼니의 맛갈나는 식사, 밤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해변에서의 스쿠버다이빙, 수상제트 타기, 먹어라 놀아라 그야말로 신명나는 일주일간의 피로연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호사를 누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애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의 결혼식 끝판왕은 이런 걸까?"

행복하다기보다는 이기적인 젊은 세대의 아들부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이다.


결혼식이 있고 나서 일 년여 후에 두 부부가 꽃다발을 들고 싱글벙글 표정으로 우리 집을 찾아았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 누가 (직장에서) 프로모션이라도 갖었니?

며느리가

"아니요, 아버님 저 임신했어요. 축하해 주세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이 어느 날 식당에서 우리 부부에게 "엄마, 아빠는 손주를 기대할 수 없을 거라고 선언" 했기에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아쉬움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며느리 에이프릴(April)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결혼하기로 약속할 시 자녀는 안 갖은 걸로 서로 합의한 게 아니었어?

맞아요

아버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줘요?


당신 아들 제임스가 연애할 시 나에게 결혼하면 자기는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하데요. 그래서 나는 자녀를 원한다면서 애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제임스와 결혼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지요. 일주일 후에 나에게 다시 돌아와 애를 가질 터이니 결혼해 달래요.”


놀라웠다.

한 젊은이의 평소 신념이 사랑하는 이의 말 한마디에 여지없이 꺾이다니.

부모 앞에서는 너무도 당돌하고 당당하게 큰소리치더니 애인의 일침에 꼬리를 내리고 순종하다니.


그래 자녀는 몇이나 계획하고 있냐고 며느리에게 물었다.

최소한 5명이라고 대답한다.

이를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 녀석이

Oh My God 한다.


그러던 이들이 이제는 딸 하나, 아들 하나씩을 거두고 있다.

손자가 벌써 다섯 살

그 나이에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독일어를 제법 쓰고 말할 줄 안다면서 은근히 아들 자랑이다.


아들 등을 토닥거리면서


"조금만 더 고생하려무나

지금은 힘들지만 금방 지나간단다"


나중에는 저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여 상 받으러 연단에 올라가는 모습을 볼 때면 부모는 세상을 다 갖은 듯 기분이 하늘을 찌른단다. 그 기쁨이 어찌 돈으로 계산이나 되겠니?

아들 네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년 전체에서 줄곧 1-2등을 할 때면 엄마 아빠는 무척이나 행복했단다. 하는 일이 힘들어도 너희들은 늘 나의 희망이었고, 자랑이었고, 활력소였단다. 친구들이 누구네 자식이 이번에 아이비 스쿨(ivy school)에 합격했다네 하면 마음속으로 "두고 봐, 우리 아들도 하버드 아니면 에일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의기양양했단다. 지금도 충분히 자랑스러워. 너희들은 이 기분을 알기나 할까? 너도 나와 같은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더 참고 살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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