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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내열 Sep 26. 2023

아내의 마네킹이 돼버린 나

나 라는 사람은 좀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태어나서 지금껏 신발이나 옷을 직접 사서 신고, 입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께서 모든 것을 사 주셨다. 결혼 후에는 와이프가 부모님이 해 주셨던 일을 똑같이 해줬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 어찌 그렇게 됐다.


내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와이프는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괜찮은 브랜드라고 하는데 글쎄다. 나에게는 유명 브랜드와 제네릭 브랜드 간에 무엇이 다른지 도무지 구분이 안되고 다 같아만 보인다. 이런 것을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 격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를 그렇게 입혀서 밖으로 내 보내는 와이프의 대리 만족은 아닐는지?  


호주머니에 현금이 두둑하게 있어도 이 돈으로 어떤 옷을 사서 입을까? 하고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신 뭐 맛있는 것은 없는지? 예를 들자면 스테이크 맛의 끝은 어디일까? 뉴욕 맨해튼에서 한 사람당 $1,000씩 한다는 초밥은 어떤 맛일까? 에 관심이 더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와이프는 남편으로부터 살가운, 잔잔한 정을 기대한다는게 남의 것이 돼버린지 오래다. 남의 남편들은 출장 다녀오는 길에 와이프 화장품이나 핸드백을 사다 준다는데.....  지숙이 엄마는 얼마 전에 생일 선물로  보석을 받았다나?  남편이 얼마나 자상하면 와이프 속옷 팬티까지 사다 줄까? 내 와이프는 무슨 색깔의 팬티를, 어떤 타입인지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와이프가 남편을 남들과 비교하면 짜증이 나거나 자존심이 상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는단다. 예나 지금이나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말이 있다. "생일날 하루 야단법석을 떨면 뭘 해? 나는 당신을 매일매일 생일처럼 해피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글쎄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또 와이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잘하고 생일날도 특별 이벤트를 만들어 축하해 주면 더더욱 좋으련만....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그런 남자려니 하고 산다니 체념의 경지에 도달했지 않나 싶다.


와이프가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샤핑할때면 나는 샤핑몰 입구 벤치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인터넷으로 책을 보면서 그녀를 기다려준다. 어쩌다 내 옷을 사거나 신발을 사야 하니 같이 들어가자고 하면

"왜? 나 옷 많이 있는데 또 사?

나이 들수록 밝고 화려한 색깔로 입어야 해"


점원이 나를 쳐다보며 허리 사이즈가 얼마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고개를 꺄우뚱하면서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신발 코너에서도 마찬 가지다. 사이즈를 몰라 발끝을 내밀면 옆에서 와이프가 사이즈를 일러준다. 이런 생활이 수십 년 지속되다 보니 사이즈뿐만 아니라 이젠 색깔도 구분 못하는 색맹이 돼가고 있다. 무지개 색깔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도 제대로 구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green과 blue를 혼돈해 면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무식한 건지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공부를 제대로 안 했나?


옷 입는 것도 세련되지 않게 아니 너무 어울리지 않게 입는다는 와이프의 지적이다. 매치를 못한다는 얘기다.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데도 그녀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이다. 남 보기에 옷을 맵시 있게 입고 다니는 것도 사회생활의 기본 매너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녀는 자기 짝꿍을 조금이라도 멋지게 입혀보고 싶은 욕심이 아닌가 싶다.


어쩌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어? 옷 멋있는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은 좋다.

"그 옷 누가 고른 거야?

와이프

역시 센스가 있으셔 “


이제는 나의 의견도, 나의 색깔도 없이 그녀가 입혀준 대로 입고 다닌다.  이쯤되면 나 라는 사람을 살아서 돌아다니는 마네킹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주말에 성당을 가기 위해 나름 옷을 골라 입고 이층에서 내려오면 와이프가 "자기 옷이 뭐야? 너무 엉터리다. 다시 올라 가자." 나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 옷을 골라 주면 다시 갈아입는 남편이 돼버린지 오래다. 초등이 들도 나름대로 자기 색깔과 패션이 있으련만 나라는 인간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하지만 맹꽁이 같은 녀석도 애착을 갖고 있는 모자와 셔츠가 하나씩 있다.  사우스 캐롤나이나(South Calolina) Kiawah resort 골프장에서 샀던 모자(cap)  그리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California San Diego) Torrey Pines 골프장에서 산 하얀 색깔의 셔츠 다. 모두 다 골프장 로고가 새겨져 있다.


모자는 너무 오랫동안 쓰고 다녔기에 약간 퇴색도 됐고 모자 창은 땀에 젖어 누런색깔이 베어 눈에 거슬린다.

"자기야,  이것을 세탁소에 맡겨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아냐, 내가 집에서 빨아볼게

그래도 전문가에게 맡겨 보는 게 좋지 않겠어?"


그녀는 나의 요청을 두세 차례나 거절하고 끝내 집에서 클로락스로 표백처리를 했는데 완전히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누런색이 남아있다. 다시금 세탁소에 의뢰해 보자고 권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불편한 기색이다. 너무 오래되어 퇴색 됐는데 왜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못 생겼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도 나름 애착이 가는 것도 있다. 야수와 미녀의 사랑까지는 아닐지라도 어울리지 않는 남녀가 좋아서 죽고 못 사는 모습을 볼 때면 "어데가 저렇게도 좋아서? 제눈에 안경이야" 한다. 내 눈에는 아직도 괜찮고 멋져 보이기만 한 모자다. 나름 애틋한 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 그녀가 오히려 야속하다.


못 마땅해하던 차에 이번에는 토리파인 골프장에서 샀던 셔츠에 대여섯 개의 검은 스팟이  묻어있다. 또다시 와이프에게 세탁소에 맡겨 보자고 권했다. 같은 대답이다.  집에서 스팟을 지워보겠다는 것이다. 왜 고약한 클로락스 냄새를 맡아가며 굳이 집에서 지우려고 하느냐고 따져 물었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세탁소에 맡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려면 어때 깨끗이만 빨아 준다면.  이번에도 지켜보기로 하고 기다렸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다. 스팟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모자와 셔츠를 움켜쥐고 나오면서

“도대체 내 의견을 무시하고 이러는 이유가 뭐야”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내가 뜬금없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영문을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왜 그래?

몰라서 묻는 거야? 이래서 세탁소에 맡겨보자고 했잖아요

그 정도면 됐지 뭐가 못 마땅해?

둘 다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잖아요?

세탁소에 맡겨도 결과는 같아요

왜 시도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갖다 맡겨 보시구려 “


한쪽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다른 한쪽은 별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부부싸움. 왠지 억울하고,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 남편의 애틋한 정을 와이프가 헤아려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난 나는 집을 나와 혼자서 무작정 산속을 걷고 있다. 방향감각도 없이 발걸음이 가는 대로 벌써 7시간째 걷고 있다.


@  남들이 보기에는 질투심을 느낄 만큼 다정한 우리 사이에도 이런 간극이 있었던가?

@  그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잘 헤아려줄 수 있는 그녀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우리는 서로를 더 알아가야

     하는지?

@  마네킹 이기를 포기하고 싶은데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할는지?


저물어 가는 해를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만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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