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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간과 화장실

by 문 내열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우리 집에는 칫간이 있었고 학교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용도가 비슷한 공간 이기는 하나 우리 집에 있는 것을 화장실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칫간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다보니 MZ세대는 어린 시절 우리 집 칫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이런 사람이 이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지는 않을는지?


시골 우리 집은 안채 그리고 두 개의 별채가 있는 꽤 큰 규모였다. 두 개의 별채중 한 채에는 사랑방과 소 외양간이 있었고 다른 한 채에는 돼지우리와 칫간이 있었다. 가로 4미터 세로 5미터 깊이 3미터 크기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똥통에는 기다란 통나무를 줄줄이 깔아서 덥게를 만들었다.


헛발을 내딛으면 웅덩이로 빠질 수 있었고 빠졌다면 깊이가 있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번 두려움이 있었다. 화장지도 처음에는 비료나 시멘트 포대를 사용하였다. 나중에는 학년이 지난 교과서나 다 쓰고 난 공책을 사용했다. 종이가 너무 빳빳할 때는 두 손으로 비벼서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수세식 변기는 중고등학교에 있는 화장실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수세식 변기는 일을 보고 나서 머리 위에 걸려있는 물통에 줄을 당기면 변기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대학은 광주에서 다녔는데 대학교 화장실 또한 수세식 변기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어느 부잣집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그 집에서 좌변기를 처음 접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장실 크기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방보다 더 커 보였다. 바닥은 하얀 색깔의 타일이 깔려있고 벽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 "세면대, 욕조, 변기"가 하얀색 이어서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바닥에 밥알이 떨어져도 주워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순간 나는 화장실에서 당황했다. 대변을 봐야 하는데 그 안에는 지금껏 내가 사용해 왔던 수세식 변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이곳이 화장실이라고 했겠다?

매의 눈으로 스캔을 했다. 그래, 이것은 세수하는 세면대, 목욕하는 욕조. 이들은 낯설지가 않았다

그리고 조그마한 크기의 볼(좌변기)이 있었는데 큰 일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볼 위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보기에는 너무 높아 보였다.


앉아서 용무를 본다?

그게 가능한가?

용무를 보고 나서 물을 내려냐 하는데 이를 어찌한담?


뒤돌아서서 변기옆에 붙어있는 레버를 당겨도 보고 위아래로 흔들어도 봤다. 물이 "샤아"하고 내려간다. 동시에 물통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가 한참이나 계속된다. 기다려도 멈추지를 않는다. 물통이 채워지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터인데? 혹여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에라 모르겠다"하고 문을 닫고 나와 버렸다. 방으로 돌아와 공부를 가르치면서도 화장실 변기에 물이 멈추지 않았던 터라 물이 차고 넘쳐 이 집에 물난리가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물난리가 났다는 소리가 없어 별일은 없었구먼 하고 안도했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2차 세계대전 때 실종됐다가 28년 만에 Guam 정글에서 구조된 일본군인 Shoichi Yokoi 가 떠 오른다. 세계대전 후 엄청난 속도로 발전된 현대문명에서 그 일본군인이 바라본 오늘은 어떠했을까? 28년 동안 산속에서 "타잔"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그 부잣집 화장실에 들어가 좌변기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게 무슨 용도라고 생각할까?


사회와 단절됐던 그 일본군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브라운관 티브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저 티브이 안에 혹여 사람이 실존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궁금해 했다던 얘기는 지금도 옛날 추억 거리로 언급되곤 한다.


세대 간의 대화에서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고 나라는 사람은 "갓생, 워라밸, 디지털 단식, 티키타카" 등의 신조어를 접하면 이들을 전화기에 메모하곤 한다. ChatGPT 도 열심히 공부하여 활용하고, 여행시에는 항공사들의 앱을 다운로드하여 온라인 보딩패스를 사용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고 산다면 그런대로 살아질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 세대가 이 사회를 이끌어 가고 그들의 세상이 보다 편리하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온라인으로 해외직구, 비행기 티켓팅, (해외여행용) 비자신청, 주변맛집 찾기 등을 어떻게 할 줄 몰라 자식들에게 의지하며 사는 기성세대들은 "자식이니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지"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이미 불편하게 만들고 있단다. 왜? 부모들이 지근거리를 벗어나면 "애를 물가에 내보내는 심정" 이니까.


관심을 갖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고 조금맘 노력 한다면 못 따라갈 이유가 없다. 어떤 친구들은 약속 장소를 정해놓고선 내가 염려가 됐는지 아니면 친절을 베푼다는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처럼 "친구야 전철 4호선을 타고 명동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면 돼"한다. 이제는 이런 친절도 촌스럽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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