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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se와 Hell이 30분 운전거리에 있다

by 문 내열

호기심이 많고 질투가 심한 사람이다. 시골에서 살다 도시로 나와보니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처지를 놓고 조상님 탓을 하기도 했다. 어찌 텃 자리를 시골깡촌에 잡아 쌩고생들을 하며 힘들게 살고 있냐고. 시골에 살 때만 해도 농번기에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내기와 밭갈이를 하고 눈이 내리는 농한기에는 일손을 놓고 사랑방에 모여 오손도손 얘기를 하며 한겨울을 보내곤 했다. 그게 사람이 사는 세상 전부 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도시 속에 세상은 달랐다. 두툼한 겨울 옷을 걸쳐 입었는데도 추워서 덜덜 떨고 얼어붙은 손을 입으로 호호 불며 새벽에 길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미화원이 있는가 하면 멋진 슈트차림으로 기사 딸린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왕자님들도(재벌 2세) 있었다. 저들은 진정 돈 버는 재주가 남달라 사장자리까지 올랐을까? 아니면 부모 잘 만난 덕택일까? 재벌총수들이 감방을 안방처럼 들락거리는 기사를 접할 때면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가 힘들었다.


잘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놓고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또 밑바닥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동네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 지사원으로 발령을 받자마자 L.A. 인근에 있는 부촌과 빈촌을 찾았던 얘기다.




미국에서 돈 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있다. 그 이름이 베버리힐이다.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숲 속에 요정이 살고 있는 듯 조용하고 주변풍광이 그지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자동차로 30분 정도 운전하여 달려가면 흉물스러운 상가건물과 주택들이 즐비하다. 길거리에는 남루한 차림의 시커먼 흑인들만 보인다. 으시시하고 스산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곳을 빈촌 싸우스베이라 부른다. 이 두 동네를 paradise와 hell로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베버리힐의 평균 주택가격은 (zip code 90210) 550만 불(한화 70-80억)이다. 프랜치스타일 저택이 1억 6천만 불, 한화로 2,200억 원에 거래됐다 하니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놓고 살기에 2,200억 원이나 하는지 상상이 안된다.


어느 한인 교포가 열심히 돈을 모아서 베버리힐에 집을 장만했다. 그이는 집안에 잔디 깎기나 나뭇가지 치기를 해야 할 때면 가드너(gardener)를 시키지 않고 직접 했다.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부촌에 입성했다는 뿌듯함에 집안을 손수 꾸며보고 싶은 욕심 에서였다. 이를 지켜본 이웃이 다가오더니만 "너 가드닝(gardening) 비즈니스 잘되고 있니?"하고 묻기에 당황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는 한인이 새로 이사 온 이웃인 줄 알면서도 나뭇가지 치기를 직접 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아 가드너 (gardener)로 비하한 것이다. 그래도 이 동네에 들어와 살려면 집안청소는 하우스메이드(housemaid)를 써야 하고 잔디나 담장 관리는 가드너를 쓸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봤을 땐 내 집을 내가 관리하겠다는데 무슨 참견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있는 자들(부자들)의 자존심은 그게 아닌가 보다. 하기야 한국에 금수저들이 지하철과 대중교통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고들 하는데 베버리힐에 사는 그들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서양에서는 부자들이 질투의 대상이 아니고 부러움과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부분이 자수성가형이고, 재산의 상당량을 사회에 환원하고, 또 그들은 신의 은총을 더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인타운에서 요식업을 하여 유명세를 탄 교포 사업가가 엘에이 타임스 (L.A. Times newspaper)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 한 달에 한 번씩 영업을 중단하고 주차장을 동네 리싸이클센터로(폐품수거) 활용토록 배려를 하느냐?"고 물었다. 주인 대답왈 "지역 주민들의 성원으로 비즈니스가 잘됐기 때문에 자기도 지역사회를 위해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지역주민에 감사하는 생각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는 부자들이 사회에 감사하고 이에 보답하고 싶다는 미담을 언제쯤에나 들을 수 있을는지------




우리 이웃집에 살고 있는 한인교포 찰스는 싸우스베이에서 20년째 리커스토를(편의점) 운영하고 있다. 그의 가게를 찾았더니 싸우스베이에서 돈 벌어 지금 살고 있는 저택을 장만한 사연과 "귀신 잡는 해병대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이 동네에 멕시칸이 많이 유입 됐지만 예전에는 흑인들만 살던 동네였다. 흑인들만이 살던 때에는 가게 영업 이윤율이 30-40% 였단다. 대부문의 흑인들은 일을 하지 않고 국가에서 주는 웰페어로 ($800) 생계를 꾸려간다. 정부에서 웰페어 체크를 받는 날이면 이 가게로 몰려와서 캐시아웃 (체크를 현금으로 바꾸는 것)을 하는데 그 수수료 수입이 짧잘했단다. 그들은 이 현금을 절약해서 한 달 식비로 써야 하는데 캐시아웃 즉시 가게에서 위스키를 몇백 불어치 씩 사간다. 위스키 마진율이 무려 40% 였으니 비록 총과 함께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만한 돈벌이가 없었다 한다. 흑인들은 정부에서 지급되는 웰페어를 보름 만에 다 써버리고 난 다음에는 길거리로 나가 구걸을 하가나 도둑질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꿈이 없는 사람들. 그들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늘만이 있고 내일은 날이 밝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란다.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렇게들 사느냐고 홈리스들에게 따져 물으면 당신네들 물세, 전기세에 대해서나 걱정하라고 눈을 부릅뜬단다. 미국 전역에 홈리스가 70만 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지만 다시금 길거리로 뛰쳐나와 버린다. 누구로부터 간섭받는 게 싫고 돈 벌기 위해 머쓸(muscle:힘 쓰느일)을 쓰거나 영혼을 갈아 넣고 싶지 않다는 이유 에서다.


도둑질하는 갱단과 공생하고 있는 이야기다. 어느 날은 동네 갱이 쫓기는 몸으로 가게문을 열고 허겁지겁 들어오더니 손에 쥐고 있던 차두를(물건 담는 백) 쓰레기통에 집어넣고서는 뒷문으로 도망을 갔다. 얼마 안 되어 추격 중이던 경찰이 들어와 그놈이 어디에 있냐고 묻기에 저 뒷문으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2시간 후에 갱이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돌아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차두를 꺼내어 돈을 세더란다. 찰스왈


"너 혹여 한인타운에서 한 건 한 것은 아니지? (한인타운은 싸우쓰베이 바로 윗동네다)

나를 봐서라도 그곳에서 이런 짓 하면 안 돼?"


갱단두목과 친구가 된 사연이다. 가게 카운터 밑에서 권총을 꺼내 보인다.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안에는 장총이(사냥용으로 쓰는 기다란 총) 한 자루 더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십 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와서 우유통과 과자 봉지를 집어 들고나가면서 주인장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쫓아가 잡지 않고 그냥 동네 잡범 이러니 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또다시 들어와 우유와 칩을 들고나갔다. 어쭈 이건 아닌데? 그래도 참았다. 그러다 세 번째에는 물건을 집어 들고나가는 녀석을 쫓아나가 뒷모습을 보고 허벅지에다 총을 쏴버렸다. 그런 연유로 찰스는 경찰에 잡혀가 연금 됐다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고 한다.


경찰에 잡혀간 이유는 두 가지 잘못을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는 총기를 가게 안에서 사용해야지 밖으로 나와서 쐈기 때문이고. 둘째는 뒷모습을 보고 총을 쐈기 때문이다.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적의 뒷모습에 총을 겨누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찰스는 왜 이를 몰랐을까? 너무 흥분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보석으로 풀려 난 후 얼마 안돼 가게로 다시 돌아오니 30대 후반의 흑인이 찾아와 지난번 총기 사건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묻는다. 사연을 다 듣고 나서는 "내가 이 지역에 갱 두목"이라고 소개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먼저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애들을 잘 다독거리겠다고. 이후로 두목은 찰스 가게에 종종 들러서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곤 했다. 이제는 두목과 친한 사이가 됐고 잡범도 더 이상 들락거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L.A. 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경찰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빙빙 돌고 있으면 "또 총기 사고구먼"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 이제는 미국사람이 다 됐나 보다. 티브이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리커스토어에서 총기사고가 났다는 뉴스보도를 접하면 혹여 찰스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싸우스베이는 아닌지 촉각을 곤두 세우곤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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