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하면서 하던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시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하얀 연기를 공중으로 내뿜으며 머리를 식히고 나서 자리로 돌아오면 조금은 기분전환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곤 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몰라도 내손에는 담배 대신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를 식히는 방법이 진화한 건지 아니면 세련된 건지 이제는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휘날리는 민들레꽃 홀씨처럼 여태껏 가보지 않았던 세상에다 나 자신을 내다 놓으면 신기해하기도 하고 긴장도 하면서 새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면 어제까지만 해도 골치 아팠던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웅장한 대자연 앞에서 " 아름답다. 신비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내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애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이렇듯 여행은 삶 속에서 멍들어가는 나를 도피시켜 새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활력소가 되곤 한다.
여행 중에 만난 많은 사람들. 터키에서는 40대 초반의 여자가 80대 중반의 다 늙은 sugar daddy와 여행 중이었는데 우리 부부와 함께 투어를 했다. 칠레에서는 자녀교육을 다 마친 중년 부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 달 계획으로 파타고니아를 돌다가 우리 일행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서 변호사를 하다 은퇴하고 세계 100여 개 국가를 섭렵하고 있는 80대 중반의 어드벤처를 사랑하는 노인, 그는 인터넷과 내비게이션을 멀리하고 지도책 한 권으로 아날로그식 여행 중이었다. 여행 중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나눈 대화 중에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내 기억 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들도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어느 한국인 미국교포. 그는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북한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고 서울에 있는 형제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란다. 그는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단다. 헐벗고 살고 있는 그들에게 속옷 팬티만 빼놓고 걸치고 있는 모든 옷가지를 벗어주고 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사용하던 칫솔마저 주고 왔다면서 허공을 쳐다보며 길게 한숨을 쉬고 있는 그 모습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목사는 북한에 있는 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 충격과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북한에 있는 친척분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껏 외부와 차단되어 고립된 사회에서만 살아왔던 그들이다.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현재의 생활이 사람 사는 세상 전부 인 줄만 알았을 것이다. 그러다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 하거나 비관하지는 않았을는지. 아니면 앞으로 살다 보면 더 좋은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의 시발점이 되지는 않았을는지.
나는 유년기에 시골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매우 행복했었다. 부모님이 하시던 농사일을 도우면 칭찬을 받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아무개 아들이 대단한 효자라고 하면 어깨가 으슥해졌으니까. 또 딱히 도전 이라든가 경쟁이라는 걸 생각해보지 않고 이게 세상 사는 재미인 줄만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화려한 빌딩숲과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적잖이 놀랐다. 이런 도시 속에서 우리 4 식구는 환경이 열악한 단칸방에서 살았다. 샤워시설이 없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 사용마저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만 했다. 불평과 불만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 인간답게 사는 건가 하고 말이다. 때로는 불만이, 때로는 좌절이 나를 늘 힘들게 했다.
북한 오지에서 살고 있는 목사 친척분들도 어쩌면 내가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 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던 것과 같이 이들의 만남이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우물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 놀래게 하는 만남이 아니었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