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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나이의 배반

by 문 내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다. 마을 청년들이 모여 놀면서

"나처럼 군대를 갔다 와야 어른이 되는 거야"

아, 어른이 되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시 직장동료의 50회 생일파티가 있었다. 풍선을 여기저기에 걸어놓고 벽에다는 Conguration이라고 커다랗게 써서 붙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You are down the hill 이라고 쓰여있었다. 50이 되면 인생 내리막길이구나! 새로운 도전보다는 그동안 일구워 왔던 것들이라도 잘 추스르라는 의미 일까?


두 번의 계기가 내 인생 변곡점의 기준이 된 셈이다.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건 것 같다.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는 게 왠지 싫었다. 그냥 사람들이 어른스럽게 대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아니 최소한 어른답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도 동료들과 함께

술집에 가면 "이 분이 제일 어려 보인다"고 하면 왠지 쪽팔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보였으면 했다.

왜 그랬을까?

어려 보인다고 남들이 얕잡아 볼까 두려워서였을까?

아니면 의젓해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그러다 지금은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다고 할 만큼 나이를 먹어 버렸다.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나이가 아니고) 연세가 어떻게 되셔요 하고 묻는다.

XX살입니다

어머나! 어쩌면 그토록 젊어 보여요?

글쌔요, 아무 생각 없이 살아서 그러나 봐요.

(와이프가 옆에 있을 때면) 다 이 사람 덕택이지요.

속으로는 기분이 째지게 좋다.


내가 세상을 잘 살았구나 싶다.

부정보다는 긍정의 사고로

시기. 질투보다는 사랑으로

살아서 일게다.


한때는 어른스럽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면 헤벌레 하는 내 모습이 참으로 배반적이다.


이제는 생각이 많아졌다. 허리가 굽고, 몸이 기울고, 걸음걸이기 불편하여 다리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들도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께서 불편하셨는지 손등을 주무르고 계신다. 핏줄이 튀어올라와 너무도 선명한 푸른빛이었다. 그 옆에 할아버지의 얼굴은 검버섯이 많아 핏기마저 바래 버렸다. 저런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가 언제부터였을까? 새삼스럽다. 늙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지만 왠지 싫고 두려웠다.


세월의 흔적이 저런 것인가?

아름답게 늙을 수는 없는 건가?


미국에 있는 내 사업장에 찾아온 어느 손님 얘기다. 그녀는 나이가 줄잡아 80대 후반으로 보였다. 머리카락은 은발인지, 백발인지는 몰라도 하얀 머리카락에 피부가 고운 백인 할머니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늙었어도 참으로 아름답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저렇게만 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80이 넘은 나이에도 해맑은 얼굴이 늙은 선녀처럼 보인 할머니가 부러워 보였다. 이 할머니의 아름다음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법당에서 걸어 나오는 스님을 보면 자비로워 보이고 성당에서 마주친 신부 에게서는 사랑과 용서가 먼저 먼저 떠 오른다. 그들이 걸치고 있는 옷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평생 동안 살아온 삶의 흔적이 그렇게 풍기고 있을 것이다. 사업장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의 얼굴도 정녕 그녀가 살아온 거울이 아니었나 싶다.


요즈음은 명동거리를 걷는다거나 강남 식당가나 커피숍을 찾으면 왠지 눈치가 보이고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터인데 "괜스레, 혼자서" 자존감을 잃고 있는 내가 싫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거나 입고, 걸치고 다녀도 멋져 보인다. 활기찬 발검음으로 곁을 지나가면 사람 냄새를 풍긴다. 길을 걷다 두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아름다운 한쌍이 여기에도 있구나. 나도 저랬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제는 의지하고 걱정해 주는 나이가 돼 버렸다.


어느 날 지하철에 오르니 젊은 여자분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손사래를 쳤다.

혼자서 "아니에요" 하고 소리쳐 보지만 그러나 그 젊은 여자분은 "당신이 내 앞에 서 있으면 제가 불편하답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는 했었지만 양보를 받는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늙은 고목에도 꽃은 핀다고 했다. 어쩌면 그 꽃이 싱싱한 나무에 피어있는 꽃보다 더 찐한 향내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도 있다. 옷맵시를 추스르고, 가슴을 펴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서 다시금 거리로 나서본다. 여기 중년의 멋쟁이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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