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뭐 잘못한 게 있어?
왜?
요즘 아빠한테 자꾸 화를 내며 싸우고 있잖아
네가 상관할바 아냐. 너는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해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는데 내가 왜 신경을 안 써?
너는 몰러도 돼
나 초등학교 3학년이야. 이제 나도 알 것은 다 알아 “
모녀가 나눈 대화다. 엄마는 남편의 외도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그렇다고 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다. 딸아이의 예감은 심상치 않다. 평소에 우리 엄마가 아니다. 자꾸만 아빠에게 화를 내고 쥐 잡듯이 몰아붙이니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자기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뭔가를(화해 내지 조정)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한국에 있는 어린 자녀들의 생각이다.
성숙한 것일까?
주제넘은 것일까?
반면에 부모들은 자식들이 어른들의 세계를 생각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엄마는 딸에게
"알기는 지가 뭘 알아? 기저귀를 뗀 지가 얼마나 됐다고. 계집애"
미국에서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모녀의 대화 내용은 달랐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할 거야?" 하고 묻는다.
그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게 아니냐? 헤어진다면 나는 어느 쪽에 붙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생존의 셈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위에는 이혼 자녀가 너무 많다. 유치원부터 집단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이때부터 "이혼"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대화 중에 "우리 아빠" 하면 바로 "낳아준 아빠야? 아니면 새아빠야?" 하고 묻는다. "새아빠"라고 하면 곧이어 "몇 번째 새아빠"냐고 묻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이혼을 아픈 상처로 받아들인다.
이혼 후에도 과거 배우자가 원망, 증오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혼 당사자는 감정조절을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자꾸 흔들어 댄다.
내가 이렇게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왜 이혼했어요?
이런 것 물으면 안 되는 줄 안다면서
누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라면서
새끼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걱정해 봤자 아무런 도움을 줄수도 없으면서
먹고사는 데에는 문제없어요?
친절, 관심, 동정이 오히려 이혼한 부부들의 아픈 상처를 자꾸 할퀸다. 아픈 상처들은 시간이 지나도 야무지게 아물지 못하고 살짝만 건들어도 쉽게 덧난다. 이혼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고 인식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 가족에게만은 남의 일이길 바랄 뿐이다.
미국에서 부부는 공동체라기보다는 파트너에 가깝다. 김 대중 대통령이 부인 이 휘호 여사를 부인이자 파트너라고 했다. 그러나 그분의 파트녀 개념은 조금 다르지 않나 생각된다. 상대를 존중하고, 토론하고, 상담을 해줄 수 있는 그런 파트너 일게다. 미국의 부부는 경제활동이나 사회생활 심지어는 취미활동마저 함께 공유하지 않고 간섭도 하지 않는다. 물건을 살 때 돈이 부족하면 배우자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리고 집에 가서 이를 다시 돼 갚는다. 식당에 들어가서 밥값을 치르면서 은근히 자기가 계산했다고 강조하면 상대는 고마움을 표시한다. 생활비는 공동으로 분담하여 각자 지출하고 살대방의 주머니에 얼마가 남아 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나는 내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만큼만 쓰고 즐기면 된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누가 실직을 당해 내가 경제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혼이다. 연애할 때는 죽고 못살다가 살아보니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헤어진다. 그들은 인내나 희생 이란 게 없다. 바로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부부간에 헤어질 때도.
같이 살던 집은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
자녀 양육비는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가
자식들을 보고 싶을 땐 주 몇 회 그리고 몇 시간씩으로 할 것인가 모든 게 명확하고 질서 정연하다.
헤어진 부부들은 원수가 아니다. 서로 성격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다른 길을 갈 뿐이다. 이혼했다고 하면 우리처럼 이유를 묻지 않는다. 묻지도 않았는데 되려 자기는 싱글 맘이라고 한다. 자신이 이혼녀라고 들통 날까 봐 두려워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자녀를 돌보지 않는 부모가 인생 밑바닥에 살고 있어 양육비를 자발적으로 주지 않으면 정부에서 끝까지 추적하여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받아낸다. 최저 임금 노동자 일지라도 현금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업주가 급여에서 양육비를 징수하여 정부에 납부토록 하고 있다. 나도 사업하면서 이런 종업원이 3명이나 있었다. 매월 체크를 두 장씩 만들어야 했다. 하나는 주정부에 보내는 양육비 다른 하나는 양육비를 제외한 급여. 매우 불편했다. 양육비를 받아낼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자녀를 돌보는 부모가 정부에 single-parent support benefit 을 신청할 수 있다.
자녀를 내 팽개치고 나 몰라라 하는 부모를 보면 동물왕국에 “치타”를 연상케 한다. 수컷 치타는 교미만 해주고 새끼들은 어미 혼자 낳아서 돌본다. 수컷은 참으로 모질다. 반면에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아놓고 가면 수컷이 꼬리를 흔들어 알을 부화시키고 생을 마감한다. 결혼할 때는 백 년을 함께 살 것같이 출발하지만 살면서 나름의 이유로 헤어져 결국은 “치타 나 가시고기” 와 같은 꼴로 살아가고 있는 부모도 있다.
큰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다. 식이 끝나고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조지라는 친구는 누나와 너무 닮지 않았다고 했더니 아빠는 같은데 엄마가 다른 남매라서 그렇단다. 키쯔라는 친구는 엄마와 두 아빠가 참석했다. 한분은 낳아준 아빠, 다른 한분은 길러준 아빠다. 나는 키쯔가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대학도(공군 사관학교) 좋은 곳에 진학했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었는데 어느 아빠에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잘 생긴 것은 낳아준 아빠 덕택이고 공부를 잘한 것은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새아빠 덕택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나눠서 인사를 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