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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아침상

by 문 내열


직장인들이 아침 출근길을 재촉 인다. 사무실에 다다를 즘에 근처에 있는 김밥집이나 토스트 가게 앞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리다. 언제쯤에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차분히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생각하니 말이다. 그놈의 직장생활이란 게 끊임없이 시간에 쫓겨 허둥대다 만다. 하는 일도 당일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다음날로 연계되다 보니 오늘이 어제와 같은 연속이다. 그들은 집에서 회사까지 서두르면서 손목에 시계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발걸음을 재촉 인다. 시간을 절약해보고 싶어 근처 간이점에서 대충 때우고 있는 게 아침식사다.


영어로는 Breakfast. break와 fast의 합성어로 단식을 중단한다는 의미다. 저녁 6시에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7시에 먹는 아침은 무려 13시간의 시차다. 얼마 만에 맞이한 음식인데 쥐구멍만 한 토스트 가게 앞에 서서, 콧구멍만 한 김밥집 나무 의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서 이처럼 허접하게 아침식사를 마주하다니 내 입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짜납고 미안하다.


나도 평생 동안 시간에 쫓겨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살다가 이제는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됐다. 아침식사 때문에 행복한 나를 발견한 게 새삼스럽다. 메뉴가 달라서도 아니고 식욕이 좋아져서도 아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차분하게, 음악을 틀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니 정말이지 세상 사는 것 같다. 살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치 못했다. 메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비록 빵과 샐러드로, 베이글과 베이컨으로, 피타브레드와 클램차우더로 만든 아침 식탁이지만 마음은 이미 귀족 부럽지 않은 우아한 식사다. 돌이켜보니 행복이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면서 와이프에게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그동안 열심히 살았잖아. 이제는 당신 자신을 다독여주고, 칭찬해 주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일러줘"


나에게는 아침밥상 이란 게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함께 아침을 먹었었다. 식탁에 앉으면 간밤에 꾸었던 꿈얘기를 하면 어머님이 해몽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인 아버지께서는 마치 군대에 지휘관처럼 식구들에게 각자 임무를 챙겨 주시곤 했다. 큰애는 학교를 끝마치면 바로 귀가하여 어머니 고추 따는 일을 도와주려무나, 둘째는 해 질 녘에 뒷동산 감나무골에 가서 염소를 찾아오라는 등. 그런 아침 밥상이 내 곁을 떠나버린지가 오래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아빠는 걸핏하면 해외출장, 공장방문으로 새끼들이 일어나 보면 집에 안 계시고 엄마는 큰애와 작은애의 학교 시간에 맞춰 등원을 시키느라 아침 내내 들락거리고 있으니 우리네 아침식사는 각자도생이다. 남편과 새끼들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집에 남아있는 와이프의 아침식사도 그 모양새가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 보인다. 이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아침이다. 가끔은 옛것이 생각날 때가 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여 아침상을 받아 들고 오손도손 얘기들을 나눴던 그 시절 그 밥상이.


오늘 아침에 내가 맞이한 밥상에는 내 꿈을 풀어 주셨던 어머니도 안 계시고, 내가 챙겨줘야 할 새끼들도 다 커서 둥지를 떠나버리고 없는 와이프와 나만의 아침 밥상이다. 그래도 내게 다시 찾아온 아침 밥상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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