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 다녀보고, 직장생활도 해보고, 사업도 해봤지만 나에게는 공부가 제일 쉬었던 것 같다. 공부는 집중하여 노력하면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중간 및 기말고사 시험이 있었다. 시험 결과를 석차순으로 학교 복도에 붙여 놓으면 모두들 숨을 죽이고 쳐다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잔인했다. 결과를 본인에게 조용히 알려주면 좋으련만 줄을 세워 전교생에게 이를 공표하니 말이다. 일등은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을까? 또 꼴찌는 얼마나 쪽팔렸을까?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독려키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사회관념이나 문화라는 게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황당한 학교의 처사가 합당치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틀안에서 잘해보겠다고 발버둥 쳤으니 말이다. 지금 같아서는 교무실로 처 들어가 "시험 석차순으로 줄을 세워 전교생에게 공표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당장 중단 하시라. 그렇지 않으면 인권침해이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하고 큰소리쳤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문제 될 게 없었고 지금은 옳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야 다양성이 요구되는 세상인지라 공부 외에도 스포츠로 꿈을 키우고, 예능에도 도전하고, IT 분야에 집중하여 백만장자가 되어보겠다고 모두를 제 분야에 자부심과 야심을 갖고 도전하는 세상이다.
아무튼 공부가 전부였던 시절에 시험기간만 되면 석차를 끌어올려 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공부하다 졸리면 밖으로 나가 세숫대야에 찬물을 받아 세안을 하곤 했다. 그래도 졸리면 이마밑에 날카로운 연필을 밭치고 있다 고개를 떨구면 이마가 연필에 찔리게 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밤 12시가 넘도록 책상에 앉아 있지만 간밤에 무엇을 공부했는지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 1시, 2시가 넘도록 공부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으려고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내 성적순위는 반에서 10등, 학년전체로는 40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상위권도, 하위권도 아닌 중위권에 맴돌고 있으니 다른 학우들은 내가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알턱이 없다. 그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너 그때 공부 잘했었니?"하고 묻는다.
대학 입시원서를 쓰기 위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어느 학교에 지원하면 좋겠는가를 상의해야 했다. 선생님은 상위권 몇 명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왜냐면 유명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합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학교의 명예이고 담임 선생님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전교에서 40위권에 있는 학생이 선생님을 찾아가 진학 상담을 하면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앉아서 진지하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볼일이 있어 걸아나가면서
"너 몇 등이니?
40등입니다.
지방에 있는 XX대학이나 지원해 봐"
하고 툭 던져 버린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학생은 네가 아니라 전교에서 10위권 안에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홀대를 당해도 나는 화가 난다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왜냐면 실력이 없으니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지방대 XX 대학이 아닌 AA대학을 도전해 보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눈을 크게 부릅뜨며
"네가 AA 대학을 가겠다고? 너 주제를 알아야지 어떻게 거기를 가겠다는 거니? 안돼
떨어져도 좋으니 원서를 써 주세요. 선생님
그래? 떨어져도 좋다면 누가 말리겠니?"
설득이나 조언은 찾아볼 수 없고 마치 남의 일처럼 내 팽개친다.
나는 AA대학을 응시하여 낙방하고 말았다. 나를 과신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진학을 성의 없이 대하는 듯 보였지만 선생님이 보는 눈은 매우 날카로웠다.
재수하면서 일 년 동안 미진한 과목에 집중을 했다. 어느 정도 기초가 잡히고 전체흐름이 파악되니 공부가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은 앞뒤의 맥락이 연결되지 않는 내용들을 그저 주어 담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이미 공부를 즐기면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굳이 밤 12시까지 깨워 있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도 이때서야 알게 됐다. 당시에 수능시험에서 전국 수석은 대한민국 모든 신문지상에 대서특필 됐었는데 한결같이 그들은 공부하느라 수면시간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들 했다. 최소한 6-8시간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시험준비를 했다 한다. 처음에는 그게 가능해? 하고 반신반의했지만 재수하면서 공부가 재밌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그 들의 얘기가 내게 와닿았다..
나는 재수를 하여 다시금 AA대학에 도전 당당하게 합격했다. 돌이켜보면 재수하며 열심히 했던 일 년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변곡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로 내가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대기업에 취업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 인생 60년 중 재수했던 일 년의 기간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냈다면 1/60의 선택과 집중이 아니었나 싶다.
공부라는 게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결정도 오롯이 나만의 것이고 결과도 모두 내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 최상이 아닌가 싶다.
직장생활 15년 했지만 나 스스로 노력해서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나같이 고집이 세고, 친화력이 없는 사람은 직장에서 동료들과의 사회성에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조직에서는 친화력이 업무 성취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를 극복키위해 노력한다 해도 쉽게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상사와의 케미도 상대적이기 때문에 나름 노력하지만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같이 입사한 동료들도 퇴사할 때까지 끊임없는 경쟁자들이다. 40명 입사했지만 4년 후에는 절반만 승진을 하였다. 매년 승진평가를 하기 때문에 그들은 동지가 아니라 내 경쟁자들이다. 지난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내 능력과 노력만으로 내 길을 찾아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회사가 번창해야 승진의 기회도 많아지고, 상사도 잘 만나야 인사고과도 잘 받고, 부서배치도 적성에 잘 맞아야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내 혼자, 자력으로 해낼 수 있는 게 공부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은 직장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수가 많았었다. 직장인들은 마지막에 사업을 해보는 게 꿈이라지만 내 경험으로는 사업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일 년에 100개의 사업장이 새로이 생겨 그중에서 95개는 삼 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금을 계속해서 쏟아부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사업이다. 사업에 실패하는 이유는 천 가지로도 부족하다. 그만큼 변수가 많다는 얘기다. 실패하면 엄청난 빚더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걸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하늘이 내려준 탤런트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사람들은 사업에 성공한 1-2%만을 쳐다보며 도전하고 목을 맨다. 나머지 98%는 그들이 뭔가 잘못했거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내가 나머지 98%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을 몇 번이고 돌이켜봐도 공부(학창 시절), 직장생활, 사업 중에서 다시 선택하라면 나에게는 단연 공부를 선택할 것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내가 관리할 수 있고, 요행이나 운에 의지하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전 과정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공부가 어디 맘먹은 대로 되나요?" 할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밤늦도록 영혼을 태워가며 일하면서도 승진과 퇴사의 두려움에 움츠리고 있을 때면 공부가 재미있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웠다. 사업하면서 힘들어 육체가 멍들고 자금이 달려 행여 길거리로 쫓겨날까 봐 가족들 모르게 혼자서 가슴을 조이며 시간을 보낼 때도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나곤 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재수하면서 이 일 년이 앞으로 내 인생의 40-50년을 좌우할 거라는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일 년 동안 열심히 집중했을 뿐이다. 그 덕택으로 오늘의 이 과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경험하지 않고도 실수와 후회를 비켜갈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값진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