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나온 세월을 곱씹어보면 나를 보살펴주는 시간이 없었던 같다.
가족과 직장을 등에 업고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달리다 넘어지면 일어나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다시 달리곤 했다.
잘살아보겠다고 못 먹고 못쓰고 움켜쥐기에 바빴다.
자식들 건사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둥대기만 했다.
자녀들 교육만 마치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이다.
그동안은 내 품 안에 있어 간섭할 수 있었고 관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둥지를 떠났기에 먼발치에서 가슴을 붙들고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취업은 제대로 할는지,
급여는 먹고 살만큼 받을는지,
회사에 감원이 있어도 우리 자식만은 피해 가기를 바라고 있다.
남들 앞에서는 말로만 담대하다. "이제 그들도 성인이 됐으니 알아서들 하겠지요." 그러나 뒤돌아서면 다시금 자식들 걱정이다. 결혼은 언제쯤이나 할는지? 착하고 마음씨 고운 짝꿍을 만나야 할터인데.
"너도 자식새끼 낳고 살아보아라, 내 마음을 이해할 거야"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도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셨던 그 말씀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 것만 같다. 내 마음의 터널 끝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는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 첫 단추를 꽤야겠다는 생각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은퇴를 하면 보헤미안이 돼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었다.
그 목적지가 한국 일수도, 스위스 일수도, 아니 아프리카 일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한 달 살아보고 괜찮으면 두 달, 석 달도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어느 시골에 머물면서 추수시기에는 포도농장에서 포도도 따주고 마을 축제가 있으면 현지인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추는 것도 상상을 해본다.
첫 목적지를 한국으로 정했다. 떠나온 지가 30년이 지났다. 신분도 코리안에서 아메리칸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3년살이를 하기 위해 미국에 살던 집은 임대를 줬다. 그리고 살림살이는 스토리지 창고에다 집어넣었다. 법무사를 찾아가 리빙트러스트를 작성했다. 얼마되지 않는 재산 이지만 내가 죽으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장 같은 것이다. 자동차도 한대는 텍사스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네 집에 갖다 줬고 다른 한대는 처분을 했다.
엘에이를 떠나던 날 리빙트러스트 서류를 큰아들에게 건네주고 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큰아들에게서 잘 도착했냐고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의 여행길을 응원해 줄 줄 알았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은퇴하자마자 짐을 정리하고 먼 길을 재촉여 떠난 게 자식들을 놀라게 했겠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떠 올랐다. 계획도, 용기도 좋지만 가족들의 마음도 헤아렸어야 했다. 가족이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온도를 지켜주는 존재다. 가족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며 성장하는 공동체이며 돌아가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다. 사소한 것에도 가족에게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30년 전 한국을 떠나던 날을 소환해 봤다. 아쉬움이나 섭섭함 보다는 앓던 이 가 빠진 기분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고국을 떠나면서 어찌 그토록 모질 수 있냐고요? 한국에 살면서 무엇하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생활자체가 찌질했기 때문이다. 구의동 단칸방, 자양동 반지하, 가락동 13평, 응암동 월세살이를 하다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가면 설마 이보다 못할까? 막연한 기대가 나를 매몰차게 만들었다. 그런 고향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가족행사가 있어 3-4일 정도로 잠깐 다녀간 적은 있어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국을 찾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씩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들을 만나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야,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또 만나는구나." 아니면 "이게 누구야?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네?" 마음은 벌써 그들의 손을 붙잡고 있다.
이민국을 거치고 공항문을 빠져나오는 순간 공항입구 저 먼발치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은 기분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설레는 이 감정은 시집간 딸이 친정을 찾는 기분은 아닐는지? 반겨주는 이 없었지만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며 숙소를 찾아가고 있다.